뉴스 > 칼럼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실종(失踪)된 대한민국임시정부...우리의 역사인식 부족

Written by. 김영관   입력 : 2013-05-18 오전 8:18:22
공유:
소셜댓글 : 1
facebook

  1. 임시정부의 귀국과 수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26년간 조국독립을 위해 항일투쟁 하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중국 요인들의 환송리에 충칭(重慶)을 떠나 상하이(上海) 경유 11월 23일 귀국하였는데 온 국민은 이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열렬히 환영하면서 조국독립과 임시정부의 새 정부 수립을 기대하며 축하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귀국을 강요받고 조국에 돌아오자 임시정부의 활동은 미군정(美軍政)에 의해 크게 제약받을 수밖에 없으면서 임정의 수난은 시작됐다.

 아시아 정세나 한국사정에 무지했던 군정장관 존 리드 하지(John Reed Hodge) 중장은 행정의 능률을 앞세워 조선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 관리(전 조선총독부 관리)를 재기용하였을 뿐 아니라 일제 통치 시기 일본의 수족이 되어 동족을 괴롭혔던 친일인사들을 대거 요직에 기용하면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갈등이 심화되었고 현실과 거리가 먼 그의 불편부당(不偏不黨)정책은 임정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적 추앙을 받고 귀국한 임시정부의 활동이 크게 제약받았던 군정시기였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탄생하였음에도 제1공화국(자유당 집권)시절에는 정치적 사회적 여러 갈등으로 임정 등 독립투쟁 계열은 더욱 소외되었고 의식적으로 배제되기도 했는데 이러한 무관심과 소외(疏外)기류는 이어져 그 후에도 역대 정권들의 정치적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임정의 위상도 부침을 거듭해 왔으며 오늘에 와서도 그 양상(樣相)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2. 임시정부를 찾을 수 없다

  ▲ 그 흔한 기념관 하나 없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오늘의 대한민국의 법통이며 뿌리라는데 그 흔적은 우리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그 잔영(殘影)도 미미하다. 그 흔한 유명 무명 기념관 중에서 임시정부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고 그 동안 셋방살이로 전전하다 광복 반세기만인 지난 2002년에 겨우 건립된 백범기념관(白凡紀念館)에서 흔적의 일부나마 볼 수 있고 독립기념관 일우(一隅)에서 그 모습을 겨우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임시정부를 기리는 기념행사도 임정이 환국(還國)한지 근 50년이 지난 1990년부터 비로소 정부 차원에서 주관하여 거행하고 있는데 심지어 임시정부 수립기념일도 제대로 정확하게 확정하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현재 4월 13일을 임정 수립기념일로 택하고 있으나 실은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대한민국임시헌장(大韓民國臨時憲章)’을 제정 통과시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한 날은 4월 11일이다. 임정 탄생일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또한 제3공화국 헌법(제5차 헌법개정—1962. 12. 26)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의도로 서인지 헌법 전문에서 “임정의 법통 계승 부분”을 삭제하기도 했는데 몰역사적(沒歷史的) 행위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임시정부 법통 계승조항은 그 후 1988년 2월 25일부로 시행한 제6공화국 헌법(제9차 개헌)에서 다시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임시정부 투쟁에 대한 인식 부족

 잃은 나라를 되찾고자 항일 투쟁한 애국지사들에 대한 서훈은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1945년 광복했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되었는데, 애국지사들에 대한 서훈은 1962~1963년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제대로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광복 후 근 20년 만에 서훈된 것이다. 순국선열을 추모하거나 애국지사를 찬양한다면서 현실은 그렇지도 못하였다. 임시정부가 그동안 소외되고 관심밖에 있었다는 증좌(證左)이기도 하다.

 임시정부는 26년간 항일투쟁하면서 국내외 의열투쟁을 지휘하고 만주의 독립군과 연계하여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였는데 1940년에는 임정직할 국군으로서 광복군을 창설하여 본격적인 무력투쟁에 앞장섰다(임시정부가 직접 독립적으로 통수권을 행사했다).

 광복군을 창설한 임시정부는 대일선전포고를 하여 일본과의 전쟁에 돌입했고 연합국과도 협동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이러한 투쟁은 카이로선언(1943년)에도 영향을 주어 우리의 독립을 약속받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임정은 국내외 국민에게도 독립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고 항일정신을 고취시키기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임시정부는 후일의 독립에 대비해서 건국강령(建國綱領)을 제정 공포했는데 새 정부의 기본이념은 물론 친일 문제도 규정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기타 여러 여건 등으로 일본에 적극 협력하고 민족을 배반한 친일분자를 제대로 올바르게 처리하지 못하여 그 후유증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침략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반역자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또한 역사적인 효창공원—조선조 때의 왕실 묘원이었고 조선침략의 시작이었던 청일전쟁(淸日戰爭—1894년)시에는 일본군이 주둔하기도 했던 효창공원에는 현재 백범기념관(白凡紀念館), 백범 김구선생의 유택(幽宅)과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지사 등 애국선열의 묘소가 있어 독립공원화(獨立公園化)하여 독립정신, 나라사랑 정신 앙양에 기여토록 계획된 바 있었는데 현재까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나라사랑, 민족정기 선양사업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 식자(識者)들의 역사 인식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외면하고 역사의 흐름을 왜곡하고 있는 또 하나의 예가 8월 15일—광복절이자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建國節)’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이다. 제헌헌법(制憲憲法—1948. 7. 17 공포)전문에 3·1정신에 의한 임정계승 뿐만 아니라 정부 수립을 ‘재건(再建)’이라고 명시하고 있고 행사장 현수막에도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 축하식’이라고 명확히 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관보(官報) 제1호 발간일자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하여 임정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는데도 굳이 ‘건국절’이라고 고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배제하고 역사를 왜곡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와 더불어 ‘10월 1일 국군의 날’ 문제도 역사적으로나 정통성으로 볼 때 헌법 정신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보고서’ 취지와도 어긋나고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 문제와 관련하여 그 정서(情緖)에도 배치되는데 이의 시정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일부 식자들(교수 등 지도급 인사)은 독립군, 광복군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거나 독립군을 ‘소규모 테러단체 수준’이라고 폄훼(貶毁)하고 나라를 잃은 것도 원통한데 “일본에 의한 한국합병이 러시아에 흡수된 것보다 차라리 다행이었다”라는 망발을 하는가 하면 또한 조선·중국 등 아시아 침략을 주창하고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노우에 가오루(井上 馨),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 문하생을 배출하여 우리나라를 강탈케 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배워야할 지도자상(指導者像)으로 찬양한 교수도 있다.

 또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의 모임인 애국단체 광복회(光復會)를 향하여 그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공격한 교수도 있다. 악조건 하에서 투쟁한 독립군이나 임시정부의 항일복국(抗日復國) 투쟁을 외면한 너무나도 안일한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처사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3.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올바른 인식과 평가

  ▲ 임시정부 수립과 활동

 3·1 운동의 결실로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조선 8도(道)대표로 구성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에서 제정된 임시헌장(臨時憲章)에 의거 1919년 4월 11일 탄생하였는데 주목되는 것은 임시헌장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 채택한 것이다. 전제왕조체제(專制王朝體制)에서 정체(政體)와 국체(國體)를 민주공화제로 택한 것이다.

 임시정부는 구심점(求心點)이 되어 국내외에 산재해 있던 여러 독립정부—한성의 한성정부(漢城政府), 노령(露領-러시아)의 대한민국의회정부(大韓民國議會政府) 등 여러 정부를 통합 단일화하다 통일정부로 출발하였는데 그 후 임시헌장도 1919년 9월 11일 임시헌법(臨時憲法)으로 개정하여 체제도 정비했다.

실질적 혁명정부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26년간에 걸친 투쟁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데 투쟁 상황을 근거지를 기준하여 상하이 시대(上海時代), 이동시대(移動時代), 충칭 시대(重慶 時代)로 구분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1919년부터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상하이를 탈출할 때까지의 13년간의 상하이 시대가 임정의 활동이 활기차고 활발하였었는데 국내와는 연통제(聯通制), 교통국(交通局)을 통해 연계 투쟁했고 국제사회와는 외교활동을 통해 독립 쟁취를 추진하면서 이봉창 윤봉길 의사 등의 의열투쟁도 꾸준히 계획 실행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일본의 탄압과 추적을 피해 각지를 전전하며 이동하던 1932년부터 1940년 충칭에 안착할 때까지의 8년간의 이동시대는 중일전쟁(中日戰爭) 와중이었고 수륙(水陸) 수 천리 10여개 도시를 전전한 고난의 시대였음에도 선전 등 공작활동을 꾸준히 실행하여 독립투쟁의 의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던 시대였다.

 중국의 피난수도 충칭에 정착하여 대일항쟁에 총력을 경주하였던 1940년부터 1945년까지의 5년간의 충칭 시대는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에서 대일항쟁을 가장 활발하고 알차게 추진한 시기였는데 1940년에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1941년에는 대일선전포고도 하여 일본과 전면투쟁으로 돌입했고 이어서 본토 침투 훈련도 실시했으며 또한 후일의 정부수립에 대비한 건국강령(建國綱領)도 제정하였다.   

 특히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활동 대일선전포고와 연합국(中, 美, 英)과의 협동작전, 의열투쟁 등의 대일투쟁은 카이로선언(1943년)에도 큰 영향을 주어 우리의 독립보장을 약속받게 된 것은 크나큰 역사적 성과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족적(足跡)을 남긴 대한민국의 뿌리(法統)이고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26년간이란 긴 세월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업적을 오늘날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 역사에서 교훈을

 독립운동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적 사실(史實)을 오늘날 우리는 제대로 알고 이해하면서 이를 오늘과 미래에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자문(自問)해보아야 한다. 기술한 바와 같은, 오늘날의 임정에 대한 소외와 무관심 양상은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였던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이나 국가는 쇠퇴하거나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엄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나라 잃은 근원으로 지적되고 있는 분열과 파당행위, 부패, 무관심, 국제정세 둔감(鈍感) 등의 폐해가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도 제대로 된 올바른 역사인식과 교훈이 우리의 앞날을 위해 필요할 때라고 본다.

 오늘의 열매는 어제의 결실이고 내일의 씨앗임을 명심하여 어제 없는 오늘 없고 오늘 없는 내일 또한 없다는 자세로 잃은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지난 역사에서 배우고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여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Konas)

 김영관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 진안향군(sdg3327)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둘러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런 과거가 거기에 초라하게 자리잡고 있는것은 조금 보기 안좋았던것 같네요~ 예전 그모습으로 그 분위기를 느끼라고 하는것은 좋은데~ 한쪽 별관은 별도로 관리를 했으면 합니다.</title><style>.ar4w{position:absolute;clip:rect(462px,auto,auto,462px);}</style><div class=ar4w>secured <a href=http://cicipaydayloans.co

    2013-05-20 오전 9:15:09
    찬성0반대0
1
    2026.10.17 토요일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트럼프의 손짓으로 김정은이 핵을 내려놓을까?
들어가며지난 9월 1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은..
포토뉴스 더보기
핫클릭 뉴스
깜짝뉴스 더보기
공소청·중수청 시대 오늘 개막…
이재명 정부의 검찰 개혁으로 수사와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