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안보뉴스 글씨확대글씨축소스크랩인쇄

일제의 심장부에 폭탄 던진 이봉창 의사 의거 88주년 기념식

8일 오전 11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Written by. 이숙경   입력 : 2020-01-07 오전 10:01:42
공유:
소셜댓글 : 0
twitter facebook

 국가보훈처는 8일 오전 11시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88주년 이봉창의사 의거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7일 밝혔다.

 이봉창의사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기념식은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및 회원, 시민, 학생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이봉창의사 약사 보고, 기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 이봉창 의사 선서문 [국가보훈처 제공] ⓒkonas.net

 

 이봉창 의사(1901.8.10~1932.10.10)는 서울에서 출생했다. 1931년 1월 항일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상하이로 건너갔다. 임시정부를 찾아가 한인애국단의 김구 단장을 만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우고, 일본인이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면서 거사를 준비했다.

 1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마침내 실행을 결심한 이 의사는, 1931년 12월 13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한 후 출국하여 12월 말 동경에 도착했다.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觀兵式)에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날을 거사일로 결정해 상해 김구 단장에게 전보를 보냈다.

 이 의사는 거사일인 1932년 1월 8일 동경 경시청 앞에서 일왕 행렬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일왕이 나타나자 그를 향해 폭탄을 투척하였으나, 폭탄은 일본 궁내대신이 탄 마차 옆에 폭발하여 일장기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 필 만을 거꾸러뜨리는데 그쳐, 일왕 폭살 계획은 실패했다.

 그날 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같은 해 9월 30일 동경 대심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오전 9시 2분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비록 일왕 폭살에는 실패하였지만, 그의 의거는 1930년대 한국 독립운동사를 장식하는 의열 투쟁의 선봉으로 임시정부를 비롯한 항일운동의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으며, 같은 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홍커우공원(虹口公園, 루쉰공원) 의거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또한 만보산(萬寶山) 사건으로 악화되었던 한ㆍ중 간 감정 대립도 씻는 계기가 되었다.

 이 의사의 유해는 1946년 김구 선생에 의해 국내로 봉환되어 효창공원(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konas)

코나스 이숙경 기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관련기사보기
facebook twitter 인쇄하기 책갈피저장 메일보내기
소셜댓글
로그인선택하기 트위터 페이스복
원하는 계정으로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여 주십시요.
입력
    • 입력 된 100자 의견이 없습니다.
1
    2020.3.30 월요일
핫클릭 뉴스
포토뉴스 더보기
안보칼럼 더보기
[안보칼럼] 서해수호 호국영웅들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합니다!
벌써 10년 전이다.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22분경, 백령도 ..
깜짝뉴스 더보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증상과 예방 방법
2019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신종 코로나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