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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단상] "오늘 나는 태극기 앞에서 또 하나의 <!>(느낌표)를 찍는다"

Written by. 이현오   입력 : 2020-03-01 오전 5: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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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 수교가 이뤄지기 전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던 당시, 공식일정에 따라 대만 주재 우리 대사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사관 중앙 건물 옥상에서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는 순간 나도 몰래 오른 손을 들어 거수경례를 했다. 외국을 방문하면 너도나도 ‘애국자가 된다’ 더니 예나 이제나 통용되는 말인가 보다.

 태극기 앞에만 서면 더 강해지고 경건해지는 이유는 뭘까? 부유하고 강한 나라건, 가난한 나라이건, 국민의식이 강한 나라건 그렇지 않건 간에 일상의 이모저모를 떠나 일반적 속성에야 별반 차이가 있을까? 다만 국력의 크기나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미침이나 파장이 달리 보일 수는 있지 않을까? 어쩌면 보편적으로 소속감이나 집단 내 일원으로서 유대와 연대의식과 더 크게 작용되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박항서 신드롬’의 베트남이 60년 만에 동아시아컵 축구대회 우승 직후 흥분과 열정의 축제 분위기에 젖은 국민들이 환호작약하던 모습을 TV 화면을 통해 지켜보면서 14년 전 미국에서 열린 한-일전 야구 경기의 생생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6년 미국 에너하임에인젤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6 월드 베이스볼’ 한-일 4강전. 7회 말까지 양국은 치열한 투수전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어 결정적 기회를 맞은 한국, 8회 초 1사 2, 3루 절호의 찬스에서 ‘바람의 아들’ 2번 타자 이종범 선수의 천금같은 적시 2루타로 극적인 2:1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안착했다.

 대한민국이 열광했다. ‘한-일’전은 물론이고, ‘일본의 전설’로 불리는 최고선수 스즈키 이치로 가 “한국이 30년 동안 일본을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는 발언으로 국민과 선수를 자극한 터여서 이치로의 코를 납작 뭉개는 건 말할 나위 없고, 전 일본을 침묵 속에 빠트리게 했다.

 관중석마저 ‘한-일’반으로 나눠진 채 재미 교포들이 흔드는 태극물결이 스타디움을 출렁이고, 우리 선수가 마운드에 꽂은 태극기가 전 세계로 전파를 타면서 전 국민의 사기와 감정은 한마디로 벅찬 감동과 감흥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는 최고 기록으로 우승, 가장 높은 시상대에 섰다. 하지만 그는 가슴에 태극기 대신 일장기(日章旗)를 달아야 했기에 가장 먼저 결승 테이프를 끊고, 시상대에 우뚝 서면서도 기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다. 나라 잃은 국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태극기는 나라의 운명, 영욕과 함께 했다. 기쁨으로 목청껏 외치며 흔들었고, 아픔과 설움을 곱씹으면서도 의연히 흔들며 환희와 애환을 함께 나눠왔다.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 태극기다. 

 외세에 나라를 빼앗겨 수천, 수만 명 백성들이 해외를 떠돌며 유리걸식(遊離乞食)한 민족이나 전쟁으로 일정 세월 나라의 운명을 저당 잡혀야 했던 짓밟힌 민족에게 있어 나라의 상징 국기(國旗)나 국가(國歌)는 더 처절하고 애틋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동일 민족의 한(恨)과 애타는 심정은 동시대 사람이 돼 보지 않고는, 나아가 그 민족의 후예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나라 잃은 설움과 아픔, 저항에의 거센 소용돌이를 섣부르게 되뇌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1919년 3월 이화학당에 재학 중인 17세 소녀 유관순은 3·1만세운동 후 고향 천안으로 내려갔다. 직접 태극기 수백여 장을 그렸다. 아우내 장터를 돌며 만세운동 참여를 알렸다. 그리고 4월 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에 앞장서 주동했다. 유관순은 일본 헌병 수색조에 체포됐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위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오빠도 중상을 입고 서대문감옥에 갇혔다. 유관순은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감옥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3·1절 1년 뒤인 1920년 3월1일에도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영화 ‘항거 : 유관순 이야기’가 잘 일깨워 준다. 유관순 열사가 101년 전 그해 그렸던 태극기는 어떤 의미를 담았을까?

 지난해 12월 24일 크리스 이브에 필자는 최전방 동부전선 도솔산 초입에 서 있었다. 38선 이북의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지역다. 도솔산을 중심으로 1,000m를 오르내리는 높은 봉우리와 기암절벽, 험하고 깊은 골짜기로 형성된 도솔산전투(1951. 6.4∼19)는 6·25전쟁 당시 해병대 5대 전투의 하나로 꼽히는 우리나라 산악전 사상 유례없는 대 공방전으로 북한군을 크게 무찌르고 고지를 탈환한 6·25격전지의 하나다. 전 날 내린 눈으로 도솔산 일대는 온통 눈 세상이었다. 세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듯한 강풍이 엄습하고 있었지만 근처 부대에 게양된 태극기는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다. ‘여기가 대한민국의 최전방 국토의 정상’임을 자랑스럽게 알려 주는 것 같았다. 국토의 허리, 최전선에서 세찬 바람에도 의연한 몸짓을 자랑하는 태극기를 봤다.

 서울 강동지구에서 하남방향으로 한강변을 달리다 보면 구리-암사대교 너머 구리시 일원에 일정 간격으로 우뚝 솟은 대형 깃대 위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1년 365일 밤이고 낮이고 휘날리고 있어 자주 대하는 입장임에도 보는 순간 가슴 뭉클해지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가 하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진입하다보면 오른쪽 대형 건물 사옥 중간 중간에 석양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는 펄럭이는 태극기를 대하곤 한다. 왠지 모르게 상큼해지는 기운을 느끼게 한다. 가슴을 두드리게 하는 대한민국의 태극기다.

 올해 101번 째 3·1절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부분 행사가 취소된 가운데 맞게 됐다. 시내거리 태극기나 태극기 관련 행사도 예년과는 어쩔 수 없이 달라 보인다. 국경일이면 늘 하던 아파트 알림방송도 조용하다. 평소에도 대단지 아파트 태극기 게양 비율이 채 10%가 되지 않는데, 이번엔 또 어떻게 될지. 모두가 두렵고 힘들어 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어려울 때 더 강해지고, 담대하며 힘을 모았던 선인들처럼 그 날의 지혜와 슬기를 이어 발휘해야 할 때인가 한다.

 101년 전 오늘 아침 우리 선열들은 어떻게 했을까? 장롱 안 곱게 접은 흰색 두루마기와 치마, 저고리를 깊숙이 넣어둔 태극기와 함께 꺼내지 않았을까? 서로 만난 이웃사촌들과 의기(意氣)의 눈빛을 교환하며 공원으로, 시장으로, 동네 어귀 공터로 향하지 않았을까?

오늘 3·1절! 더 큰 마음, 더 깊이 있는 느낌표(!)를 갖고 태극기를 내걸어 보자. 나도 그래야 겠다. 네 살배기 재롱둥이 외손녀와 함께!(konas)

이현오 /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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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Crusader(crusader)   

    @ 애국선열들...특히, 이승만 장로 초대 대통령께서...?? 만일 현 시국의 장면을 천국에서 지켜보신다면?? 뭐라 하실까요~??ㅎ == "이놈들아~! 기껏! 독립시켜 놓고, 6.25때 공산당에게서 지켜줫더니만~?? 이젠...북한/중국-공산당들과 하나라고~???"ㅎㅎㅎ..."에라...미친놈들아~!!"ㅎ... 이러지 않으실까요~???ㅎ

    2020-03-01 오전 10: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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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0.5.30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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