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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4) 잃어버린 호국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나의 대장정

Written by. 김도균   입력 : 2025-08-21 오후 5: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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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5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영화‘태극기 휘날리며’를 매우 감명 있게 본 중학생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넘치는 애국심으로 군인의 꿈을 키웠고, 대학 진학보다도 소중한 꿈을 쫓기 위해 공군항군과학고등학교 진학을 꿈꾸었다.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학업에도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늘 최상위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 여름, 한 통의 말이 그를 뒤흔들었다.

 “소아백혈병 병력이 있으면 임관할 수 없습니다.”

그날 이후 그 학생은 꿈을 잃었다. 다른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에겐 아무런 비전도, 방향도 보이지 않았다.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등 갈피를 못 잡은 채 방황하던 그 아이는,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군 신체검사조차 기회 없이, 서류만으로 면제를 통보받았다. 그 아이, 아니, 나는 여전히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채로, 공허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서문: 대장정의 부름, 내 안의 울림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무의미한 밤을 보내다 우연히 학교 공지 사항에서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다. 정확히는 ‘국토대장정’이라는 단어에 먼저 반응했다. 1년간 산악회 활동으로 전국의 산과 들을 누볐던 터라. 국토대장정에 자연스레 마음이 끌렸다. 앞에 ‘휴전선 전적지 답사’라는 단어가 따라붙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심지어 전액 무료라는데! 그만큼 당시에는 호국의 의미보다는 도전과 즐거움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원서를 작성하는 내 손끝에는 왠지 모를 진심이 실려 있었다.

 기다림은 언제나 설렘을 동반하지만, 때로는 그 설렘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참가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을 수 없었던 그 순간, 생각보다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스스로 놀랄 만큼 간절했던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지만, 불합격이라는 통보 앞에서 비로소 이 여정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깨달았다. 즉시 주최 측에 추가 모집 가능성을 문의했고, 응급처치 교육 이수증까지 내세우며 이 대장정에 기필코 동참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 순간부터, 국토대장정을 향한 나의 마음가짐은 180도 뒤바뀌었다.

다행히 착오가 있었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했다. 나는 닥치는 대로 정보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의 설립 목적과 가치, 역대 대장정의 발자취, 그리고 이 행사가 지닌 숭고한 무게와 취지까지. 그 깊이를 파고들수록, 나의 동기는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을 넘어섰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웅들의 발자취를 직접 밟으며, 그 희생 위에 세워진 오늘의 평화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내 안에서 불꽃처럼 타올랐다.

무엇보다 이 사전 조사는 어린 시절 잊고 지냈던 나의 오랜 꿈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마치 꺼져 있던 심장에 다시 시동이 걸리듯, 잃었던 원동력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다음 공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했을 때,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이는 단순히 기회를 얻어서만이 아니었다. 왜인지 이번 여정이 앞으로의 내 인생의 방향성에 있어서, 마치 이정표 역할을 해 줄 것만 같은 직감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기말고사가 대장정 일정과 겹치는 불상사가 발생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시험을 포기하고 대장정에 참여하기로 결단했다. 중간 합류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이 여정의 진정한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과의 조율 끝에 나의 결정을 존중받았고, 이는 국토대장정 프로그램이 지닌 깊은 의미를 다시 한번 방증하는 듯했다.

 광주를 떠나가기 전, 나는 재향군인회가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안보의식을 온전히 함양 받겠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을 다졌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백혈병이라는 이름으로 내 가능성을 제한 지으려 했던 세상 앞에, 나 자신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저 버텨낸 사람이 아닌, 주체적으로 삶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여정의 시작: 긴장과 설렘

국토대장정의 시작은 재향군인회 회관에서의 집합으로 시작되었다. 조를 배정받고 버스에 탑승했을 때, 먼저 도착한 학교 친구가 앉아 있었다. 정원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공지글을 본 뒤 내가 이를 열심히 홍보했을 때, 응해준 고마운 친구이다. 그 순간부터 대장정이 끝날 때까지 고마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같은 버스에 탑승해 있는 낯선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스캔하였다. 앞에 이 사람이 우리 조원일까? 아니면 저 사람? 그러던 중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눈빛을 띠고 있었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눈빛. 그리고 각자가 이 대장정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이 여정에 참가하게 된 계기를 다시 한번 상기 시켰고, 부디 이 다짐이 유지되어 큰 결실을 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정겹게 인사해 주는 재향군인회 분들의 열띤 성원을 받으며 버스가 출발했다.

고성에 도착하여 안보교육관에서 7박 8일간의 동반자가 될 배낭을 지급 받았다.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구매해 온 장비들이 무색할 만큼 훌륭한 장비들에 크게 감명받았다. 모자와 조끼에 배지를 다는 순간 국토대장정 15기 대원이라는 정체성이 실감 났다. 또한 주최 측의 세심한 준비를 느끼며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든든한 안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낯선 이들과 동고동락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각기 다른 성향과 배경을 가진 이들과 조화를 이루는 과정은 여전히 내겐 고된 숙제였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정면 돌파를 택하기로 했다. 조장 역할을 자원하며 조원들 모두에게 스며들고 싶었다. 처음 만난 조원들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서, 부족한 내가 조장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기꺼이 응원해 주고 뒷받침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받았다.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이러한 용기 있는 행동 속에서, 나는 이미 대장정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값진 경험을 얻어가는 기분이었다.

국토를 걸으며 안보를 걸어 나가다.

출정식 중, 부단장님을 통해 국방TV와의 인터뷰를 제의받았다. 아마도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주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말재주가 좋은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를 메꿀 수 있는 얼굴이 되는 편도 아니라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용기가 부족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카메라 앞에 설 수 있었다. 이 여정에서 내가 바라는 바를 표현하고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 다짐을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자. 그러면 내 마음가짐도 더 확고해질 것이고, 무엇보다 이 여정을 마무리 짓고, 그 후의 일상에 있어 오늘의 기억을 돌이킬 수 있는 좋은 매개체가 되어줄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이런 당찬 포부가 무색하게 인터뷰는 서툴렀던 것 같다. 그래서 이후 인터뷰 영상 얘기가 나올 때마다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틈틈이 추억시키고 싶었는데 다시 내 손으로 찾아볼 것 같지는 않다.

출정식 후 처음 대장정을 위한 발걸음을 뗄 때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수히 늘어선 대열 속에서, 수많은 대원이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그 장면이 무언가 뭉클한 감정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그 감정은 모두의 단결에서 오는 걸 수도 있겠고, 이제 시작되는 여정에 대한 기대감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어깨에 짊어진 조기가 리더의 책임감을 이끌어낸 걸지도 모르겠다. 이 감정을 행군 내내 느꼈고, 매 순간 원인 규명에 나섰으나, 굳이 밝혀내지 않기로 하였다. 때론 해석하지 않는 편이 더 오래 기억하고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숙식을 주로 군부대에서 해결하는 만큼, 생활관 내에서 저녁점호와 불침번을 해야 했다. 전역하신 형들은 불평을 조금 하셨지만, 이제야 나는 솔직하게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겐 군부대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이 너무나 값지고 뜻깊었다. 군대에 접근 기회조차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자원해서 저녁점호를 나섰고, 경례 자세를 지적받는 것조차 마냥 좋았다. 미약하게나마 군필자분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군인들의 일상과 희생의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며 이루진 못한 꿈의 정신만큼은 누구보다 가까이서 품을 수 있었다.

체화되는 안보

우리의 발걸음이 닿은 곳마다, 푸르고 웅장한 산과 나무들은 산쟁이인 나에게 엄청난 황홀감을 선사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다가도, 이곳이 과거 치열했던 전장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대비되는 풍경 속에서 이 땅 위에서 치러진 희생의 의미가 더욱 깊게 새겨졌다.

국토대장정의 여정 속에서 마주한 호국 유적지와 전적지들은 한국의 아픈 과거와 현재의 안보 현실, 그리고 미래의 평화를 향한 염원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그중에서도 기억이 남는 장소들이 몇 군데 있다.

총탄과 포탄 자국이 선명한 노동당사를 마주했을 때, 전쟁의 참혹함과 이념 대립의 비극이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노동당사가 건설된 배경과 주민 강제 동원 같은 아픈 역사를 차치하더라도,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역사에 애정이 있어 생긴 한국사에 대한 나의 섣부른 자부심을 반성했다. 글자로만 배우는 역사와 직접 체험하는 역사는 천지 차이임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고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할 우리의 의무를 되새겼다.

제2땅굴을 탐방하며 지하 깊숙이 파고든 북한의 남침 야욕을 직접 확인하는 경험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분단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현실임을 일깨우는 경고음처럼 들려왔다. 땅굴 발견 과정에서 우리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은, '과거가 남긴 교훈'으로서의 굳건한 안보의식이 왜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했다.

천안함 전시관은 가장 최근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장소였다. 해설을 통해 희생된 46용사들의 숭고한 헌신과 천안함 피격 사건의 전모를 직접 확인하며, 국가 안보가 얼마나 한순간에 취약해질 수 있는지, 이를 지키기 위한 장병들의 노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체감했던 것 같다. 

이러한 과거의 아픔을 넘어, 제8전투비행단에서는 현대 대한민국의 강력한 국방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의 전쟁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현재에도 굳건히 나라를 지키는 우리 군의 첨단 기술과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보며, 평화가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체화되는 자아

군부대에 시간을 보낼 때마다 깊은 고찰에 빠지곤 했다. 특히나 훈련을 받고 있는 장병들을 바라볼 때 더욱 그러했다. 21살. 내 또래 남자들은 대부분 입대를 하는 때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보이는 저 장병들은 모두 내 또래라는 얘기이다. 나는 지금도 내가 저곳에 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낯설다.

물론 백혈병 투병 과정은 매우 힘들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테다. 연필만 한 두께의 주삿바늘이 내 척추 뼈 사이를 후벼파는 고통을, 경과가 안 좋다는 의사의 말을 정직하게 따라가는 몸 컨디션을, 합병증이 발생했을 때 부모님의 표정을. 그러나 끝날 것 같지 않던 고통들도 끝은 존재했고, 지금 나는 그 기억들을 잘 승화해 내었다. 지금 내 삶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노력으로 얻어낸 두 번째 삶이라는 신념 아래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충실히 살아가려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백혈병이라는 시련을 통해서 육체의 건강과 정신적 소양을 모두 향상 시켰다고 자부한다. 나는 이런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다.

남들보다 나에게 더 주어진 소중한 시간, 그 2년이라는 세월을 값지게 써야 한다는 일념으로도 이번 국토대장정에 참가했지만, 내 마음속 불편함은 여전했다. 평소에 나는 감히 발 뻗고 군 장병들의 숭고한 노고와 헌신이 일궈낸 평화를 누릴 자격이 과연 있는지 스스로 되뇌곤 했다. 술담배를 하고, 전국 등산대회에서 수상할 만큼 건강한 내가, 어찌하여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까. 어떻게 보면 죄책감일 터이다. 양안 실명으로 고통받는 이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는 점은 내게 깊은 괴리감과 죄책감을 안겨주곤 했다. 입대하는 친구들과 휴가 나온 친구들에게 기꺼이 밥을 사주며 그 불편함을 덜어내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군부대에서 장병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감정은 더욱 격렬하게 요동쳤다. 다행히도 이 해묵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여정의 마무리 단계에서 찾을 수 있었고, 이는 이번 대장정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결과로 내 가슴에 새겨졌다.

나에게 호국이란

앞서 말한 마음속 불편함에 대한 해답은 7일 차 소통의 밤에서 얻을 수 있었다. 각 조의 소감 발표 모두가 훌륭했고, 우리 조 또한 매우 성공적인 발표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기억에 남는 발표는 6조였다. 대학 방송국에서 활약하는 이하은 대원의 수준급 발표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용 구성을 알차게 잘 짜왔었다. 그 중 내게 다가온 문장 하나가 있다.

“호국은 군인들이 총과 무기로 나라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호국이다.”

머리를 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안보와 평화가 너무나 멀고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나에게, 호국에 대한 관념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가 비록 군대에 입대하여 직접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 해도, 호국과 애국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내 자리에서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국군 장병들의 숭고한 수고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았다.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응어리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이 여정이 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대장정을 함께한 99명의 대원들 중, 나는 이 새롭게 얻은 다짐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의미 있게 간직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이렇게 소통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마련해준 주최 측에게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며

좋았던 점과 바라는 점을 조금 적어보고 싶다. 우선 금전적인 지원이 엄청났다. 합치면 수십만 원은 할 것 같은 장비들을 무료로 제공해 주니, 앞으로 산악회 활동에서도 요긴하게 쓸 예정이다. 살이 쪄서 돌아왔을 정도로 제공되는 숙식도 좋았다. 여기다가 교통비 지원에 우수자 장학금 표창에...

지금 스타벅스에서 글을 작성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증정받은 기프트카드 덕분이다. 재향군인회는 호국과 보훈에 힘을 쏟는 단체일 뿐만 아니라, 돈이 많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다른 사업에도 참여해보고 싶다!

또한 특히나 좋았던 점은 각종 교육과 해설 시간이었다. 단순히 방문만으로 그치지 않고 각종 교육과 해설 시간을 통해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생각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생기는 것 같다. 경험을 진정한 의미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국 나의 몫임을 되새기며, 여정 중 모든 배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물론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나 PX 이용에 제약이 있었던 점. 참전 용사이신 외할아버지를 따라간 적이 많아 개인적으로 크게 아쉽지 않았지만, 많은 대원들이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이었다.

또한 버스에서 대기 시간이 길었다. 입장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나 회의가 있을 때 주로 그랬는데, 그럴 때마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다소 지쳤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불편함조차도, 우리가 누린 편안함 속에서 나온 불평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번 대장정이 부족함 없이 잘 기획되고 운영된 것 같다.

맺음말

향군 국토대장정 15기는 나에게 단순한 육체적 도전을 넘어선,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나는 이 길 위에서 백혈병이라는 개인적인 한계를 넘어서는 강인함을 쌓았고, 낯선 이들과 동행 속에서 진정한 공동체 의식과 협력의 가치를 얻었다. 무엇보다 분단의 아픔이 서린 국토를 직접 밟으며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물론, 대장정 중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오는 순간도 있었다. 내가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괴리감이 엄습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대장정은 의지라는 단어의 진정한 무게를 가르쳐주었다. 평소 의지라는 말을 싫어했던 나였지만, 이곳에서는 의지만 있다면 그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음을 체감했다. 그리고 이 힘듦마저도 군인 장병들의 노고와 국가 안보 유지를 위한 헌신이라는 점을 되뇌면, 없던 의지마저 샘솟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이 대장정은 나에게 '호국'의 의미를 재정의하게 했다. 군복을 입지 않아도, 총을 들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자체가 숭고한 애국임을 깨달았다. 이는 나의 국가관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걷든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기여하겠다는 다짐을 심어주었다. 이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은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굳건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 제15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이 글을 마무리 지어가는 지금, 글로 기록을 남기면서 한층 더 성숙하고 단단해진 나를 발견했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도전 속에서도 이 대장정의 정신을 잊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리라. (konas)

김도균 :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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