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6) 걸음 끝에 마주한 것들
(이 글은 '제15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시작한 이 길은 단순한 여행도, 단순한 교육도 아니었다. 우리가 발을 딛는 이 땅은 전쟁이 있었고, 분단되어 있으며, 지금도 누군가는 이 땅을 지키고 있다. 국토대장정은 단순히 걷는 활동이 아니라, 이 땅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몸으로 통과하는 일이었다.
평화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 여정에서 깊이 체감했다. 총성이 멈춘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휴전’ 상태로 살아간다. 비무장지대, 민통선, 천안함...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닌, 눈앞의 현실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과 경계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출발 전에는 단순히 행군 체험, 사람들과 함께하는 단합의 시간 정도로만 여겼다. 졸업 후 학사장교로 입대를 희망하고 있기에 미리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나는 그 안에 스며 있는 수많은 이야기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명을 마주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묻게 되었다.
“나는 이 나라에서 어떤 책임을 지고 살아갈 것인가.”
이 글은, 그 여정의 기록이자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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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강하게, 내 안에 심어진 평화와 안보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부터 그 발걸음을 돌아보려 한다.
2일차 6월 24일 (화)
출정식-12사단 신병교육대대
나는 시험 일정 때문에 아쉽게도 2일 차부터 국토대장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출정식부터 참여했는데, 단복을 갖춰 입고 줄지어 선 대원들의 모습을 보자 실감이 났다.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부른 애국가 속에서, 몇 달간 기다려온 대장정이 드디어 시작되었다는 것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출정식을 마치고 잠시 도보 이동 후, ‘조국의 창끝! 승리의 주역! 을지문덕의 후예’라 불리는 12사단 신병교육대에 도착했다. 실제 부대에서 자는 건 처음이라 위병소를 지날 땐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병영식, 관물대, 침상 하나하나가 낯설면서도 신기하게 다가왔다. 특히 병영식은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저녁을 먹고 조원들과 신발던지기를 통해 PX 내기를 했다. 역시 이런 것은 하자고 하는 사람이 진다. 내가 졌고 계산은 내 몫이 되었다.
그리고 ‘Remember: 자유의 횃불’이라는 주제로 안보교육이 진행되었다. 안보교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혼자 꾸는 꿈은 꿈에 불과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였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하루를 보낸 덕분일까. 그날 처음 만난 조원들과 함께 걷고, 함께 식사하고, 웃고 이야기하면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꾸는 꿈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3일차 6월 25일 (수)
12사단 신교대대 – 춘천 에티오피아 기념관 – 원주제8전투비행단
내린천 래프팅 체험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기상 악화로 취소되었다. 처음엔 아쉬움이 컸지만, 막상 우비를 입고 걷기 시작하니 기분이 조금씩 달라졌다.
"비? 시원하네. 오히려 좋아.“
한 조원이 툭 던진 말에 모두가 웃었고, 우비 속 땀과 빗물 속에서도 이상하리만치 즐거웠다. 불평보다는 농담을 하며 서로를 북돋우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우리 조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비를 맞으며 도착한 첫 장소는 춘천에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관이었다. 단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 조용한 공간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파병한 나라다.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가 우리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동시에 그들의 헌신에 대해 몰랐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타국의 자유를 위해 싸워준 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오늘을 누릴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식사 후에는 원주 제8전투비행단으로 이동했다.
비행단 내부 정비창을 둘러보고, 이후 블랙이글스 홍보관인 ‘김도현관’을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블랙이글스의 역사와 팀 운영 방식, 파일럿 선발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았던 건 홍보관 이름에 얽힌 이야기였다.
김도현 대위.
2006년 어린이날, 블랙이글스 에어쇼 도중 그의 기체에 문제가 생겼다.
당시 그는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지만, 이탈한 기체가 관람객이 몰려 있는 방향으로 떨어질까 봐 조종간을 끝까지 붙잡고 추락했다. 그의 희생 덕분에 수많은 관람객이 다치지 않았고, 그 용기와 책임감은 지금까지도 블랙이글스의 정신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도현관은 그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하늘을 지키는 사람들의 사명과 무게를 마주했다. 기대를 품고 시작한 하루는, 아쉬움과 감동이 함께한 날이 되었다. 비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만, 그런 변수들이 오히려 더 많은 걸 느끼게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는 사람들, 이름 없이 희생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4일차 6월 26일 (목)
제8전투비행단 – 백암산케이블카 – 평화의댐 - 7사단 신교교육대대
아침 일정은 백암산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지만, 그 사이로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날씨가 맑았다면 더 선명하고 멋진 풍경이 펼쳐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잠시 스쳤지만, 오히려 그 흐릿함 덕분에 마음이 차분해졌던 것 같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평화의 댐으로 향했다. 댐 자체보다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은 ‘염원의 종’이었다.
염원의 종이 인상 깊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이 종은 남북분단의 현실을 담은 침묵의 종이다. 염원의 종이 침묵을 깨고 세계를 향해 울려 퍼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종은 남북 분단의 현실을 담은 ‘침묵의 종’이라고 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 이 종이 언젠가는 침묵을 깨고, 세계를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울려 퍼뜨릴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이후 7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해 장비 견학을 했다. 장비보다는 견학을 도와주신 조교님들 얼굴이 더 기억에 남지만 새로운 경험이었다. 저녁에는 본격적으로 조별 장기자랑 준비를 시작했다. 전날 비행단에서 불침번을 서며 조원 언니랑 안무를 미리 익혀두었고, 조원들에게 알려주며 연습을 시작했다. 우리 조에 박치, 몸치가 많아서 연습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개인정비 시간에도 남아서 연습을 하며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5일차 6월 27일 (금)
7사단 신병교육대대 – 파로호 안보전시관 – 15사단 신병교육대대
5일 차에는 차별로 다른 점심을 먹게 되었다. 전날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져서 우리 차는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게 되었는데, 부단장님께서 “하은이가 져서 다들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라고 농담하셔서 재밌었다. 밥을 먹고 시간이 남아 조원들과 인생네컷 사진도 찍고,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오랜만에 속세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이날은 유독 많이 걸은 날이었다. 바닥에 누워 쉬고 있을 때, 햇빛이 눈부셔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니 조원들이 조 깃발로 얼굴을 가려주었다. 그 사소한 배려가 꽤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중간에는 커피차가 도착했는데,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마신 에이드 한 잔은 말 그대로 감동 그 자체였다.
국토대장정의 길 위에서, 걷는 거리만큼이나 서로를 향한 마음도 함께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느낀 하루였다.
6일차 6월 28일 (토)
15사단 신병교육대대 – 제2땅굴, 월정역사 – 노동당사 – 백마고지참전기념탑- 남방한계선 행군 – 6사단 신병교육대대
가장 많이 보고 많이 걸었던 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제2땅굴에 들어가 보고, 월정역에서는 조원들과 함께 사진도 남겼다. 노동당사에서 북한의 실상을 듣고, 백마고지참전기념탑에서 해설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백마고지참전기념탑이었다. 길게 늘어진 태극기 길이 정말 멋있었고, 전적비 시계탑이 더욱 마음을 울렸다. 시계는 각각 한국전쟁의 국군 승리를 의미하는 ‘10:15’, 전쟁이 발발한 날짜 ‘6:25’, 그리고 참전 부대를 상징하는 ‘9:05’에 멈춰 있었다. 그 멈춰진 바늘이 다시 돌아가길 바라는 염원이 담겼다는 설명을 들으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이렇게 하나하나의 설명을 들을수록,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또렷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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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남방한계선 쪽을 따라 걸었는데 발이 젖어서 아팠다. 조원인 선우가 배낭을 대신 메주냐고 했는데 그래도 내 힘으로 끝내고 싶어서 괜찮다고 했다. 자기도 힘들 텐데 도와주겠다고 말해준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또 규진 오빠는 물을 나눠주었는데, 그 순간 우리는 단순한 ‘조원’이 아니라 서로를 챙기고 아끼는 ‘전우’가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밤에는 불침번도 섰는데 가장 앞 순서라 좋았다. 이번에는 발표 준비를 했다. 먼저 개요를 짜고 우리가 느낀 것을 정리해 보는데, 노트북 없이 손으로 대본을 쓰다 보니 평소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 그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낀 하루였다.
7일차 6월 29일 (일)
6사단 신병교육대대 – 임진각평화누리공원 – 애기봉 전망대 – 덕산스포텔
6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나오며 건물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 젊음 오직 조국을 위하여’ 국방부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항상 “국군 장병 여러분 감사합니다. 파이팅!” 같은 말들을 많이 했는데, 형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국토대장정을 통해 군부대에서 직접 생활하고 장병분들을 가까이에서 접하니 이제는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는 행군을 마치고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평소 놀이기구를 잘 타지 않지만, 이날은 왠지 추억을 더 쌓고 싶어 내가 먼저 “우리 바이킹 타자!”고 제안했다. 다 같이 깔깔거리며 탔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점심 식사 후 애기봉 전망대에 올라 망원경을 통해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북한 마을, 그 안에서 걷던 누군가가 넘어진 모습까지 보였다. 그분은 아마도 한국에서 대학생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 하겠지만, 나는 그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후 숙소에 도착해서는 잠깐 준비시간을 가진 뒤, 소통의 밤 1부에서 조별 발표를 했다.
안보는 총과 탱크 같은 무기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책임감이고, 평화는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소중한 걸 지키기 위한 ‘희생의 결과’였습니다. 평화는 지켜내야 할 가치이고 안보는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걷는 이 길이 평화를 이어가는 걸음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마다 발표를 준비했던 터라 꼭 잘하고 싶었다. 우리 조가 마지막 순서라 혹시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걱정도 되었지만, 무사히 잘 마쳤고 안도감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발표가 끝나고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물어봐서 웃음이 났다.
‘소통의 밤’ 2부에서는 조별 장기자랑이 있었다. 무대에 서는 것도, 다른 조의 무대를 보는 것도 정말 신났다. 연습했던 것만큼 완벽하게 하진 못했지만, 조원들이 “우리가 더 가까워진 건 그 연습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라 말해줘서 참 따뜻했다.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아 연회장에 다시 모여 라면을 끓여 먹으며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피곤함보다 함께 있다는 즐거움이 더 컸던 밤이었다.
8일차 6월 30일 (월)
덕산스포텔 –유엔군 초전기념관 – 죽미령평화공원 – 해군2함대 천안함 – 해단식
벌써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날은 특별히 한·미군이 함께해 더욱 특별했다. 함께 걸으며 서로 다른 언어를 나눴고, 국기 패치를 교환했다. 죽미령평화공원에서는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웃음꽃을 피웠다. 뜨거운 햇빛만큼이나 우리 모두의 열정도 강렬했던 것 같다.
점심 식사도 미군들과 함께했고, 이후 해군 2함대에서는 천안함을 견학했는데 ‘천안함46용사’라고 새겨진 추모비 앞에 서자 마음이 뭉클해졌다. 짧은 설명과 함께 당시 상황을 떠올리니,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용기와 헌신이 얼마나 큰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해단식.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구호를 외쳤다.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졌던 “We are the one! 야야야!”가 이제는 진심으로 외칠 수 있는, 하나가 된 우리만의 외침이 되어 있었다. 이 여정은 끝났지만, 마음속에 새겨진 울림은 앞으로도 오래 남을 것 같다.
마무리
며칠 전, 학사장교 면접을 보고 왔다. 국토대장정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토대로 자신 있게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은 끝이 났지만, 내 안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걷는 동안 만났던 사람들, 들었던 이야기, 마주했던 풍경은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그 시간들이 가르쳐준 것은 평화는 멀리 있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지금 이 순간,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지키기 위한 책임이자, 기억해야 할 이름들에 대한 약속이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르지만, 이번 여정에서 다짐한 마음만은 분명히 남아 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느끼고,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는 마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화와 안보를 지켜나가려 한다. (konas)
이하은 : 서울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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