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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⑤] "무의식에 숨어있던 안보의식 꺼내 올리다"

Written by. 박예나   입력 : 2012-08-05 오전 8: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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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친 듯이 심장을 쿵쾅 거려라!

  이번 2012년 여름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난 2012년의 가장 큰 목표중의 하나는 바로 국.토.대.장.정! 이였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중에 하나였다.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왜 사서 고생해?” 그럼 난 “젊으니까 사서 고생도 해보지,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니까”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학기가 시작 되자마자 국토대장정에 관련한 글들을 많이 찾아보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재향군인회에서 하는 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기 시작하였고, 꼭 되리라 마음을 먹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결과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1차 발표 몇 시간 전부터 핸드폰을 붙잡고 결과만을 기다렸다. 1차 결과에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행복했다. 1차 합격이 됨과 동시에 바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받는 동안 내내 제발 아무 탈 없이 건강히 잘 나와야 될텐데 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후 최종합격자 발표 날 또 핸드폰으로 결과를 보다가 순간 이름이 없는 줄 알고 실망하고 다시 한 번 보니까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알바를 하는 도중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드디어! 우리나라 국토를 내발로 걷는구나! 하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7분대! 지금은 7분대! 영원히 7분대! 예~~

 3차 OT에서 10박11일 동안 함께 동고동락 할 조원을 뽑게 되었다. 사실 난 3차OT가기 전부터 기대감이 컸었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많이 궁금하기도 했었고 설레기도 했고, 빨리 보고 싶었다. 그리고 조원을 뽑게 되었다.

 총 대장님께서 갑자기 기수 분들을 앞에 나오라고 하더니 한명씩 놓고 “자 이기수가 마음에 드는 여자5 남자5 나오세요.”라고 말씀을 하셨다. 난 1분대 뽑을 때 까지만 해도 장난치시는 줄 알았다. 내 생각엔 “당연히 조를 짜놓았겠지~”라는 생각이 가득했고, 1분대 뽑을 때 사람들이 나가길래 장난 인줄 알았다.

 그런데 1분대 팀이 완성되고 갑자기 2분대 분대장을 세우시더니 또 똑같은 방법을 하시면서 갑자기 사람들도 막 나가기 시작하였고, 난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있다가 다른 분대에 들어갔는데 인원이 많아서 짤리고, 7분대 부르자마자 냉큼 달려가서 섰다. 다행이 인원에 들어 7분대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그 분들의 고마움과 아픔을 느끼다.

 [행군 1일차 - 6월25일] 아침에 전쟁기념관으로 하나 둘 씩 모이게 되었다. 우린 대학생 대표로 자리에 앉게 되었고, 6.25전쟁 62주년 방송을 함께하며 집에서 외워갔던 6.25노래도 부르고, 6.25전쟁에 참가하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방송을 마친 뒤엔 제5회 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 출정식을 하게 되었다.

 출정식을 마치고 우린 국립 현충원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현충원을 가게 되었는데 솔직히 현충원 도착할 때 까지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며 수다를 떨게 되었다. 그런데 현충원 안에 들어가고 나서 내가 큰 잘못을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립 현충원 안에는 국가나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이 안장되어 있는 묘지이다. 이런 곳 앞에서 내가 떠들었다니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현충원 안을 둘러보며 느낀 점은 우리나라를 위해 이렇게 목숨을 바치신 분이 많다는 것과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했다.

 또 현충원을 둘러보며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어느 한 어머님께서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이름을 보며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시고 흐느끼며 우시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마음이 찡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다음으론 공군10전비에도 가서 실제로 전쟁에 사용하는 전투기들도 볼 수 있었고 설명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해군 제2함대사 천안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난 천안함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큰 배가 북한군 어뢰에 의해 1.5초 만에 반으로 두동강이 났다고 설명해 주셨다.

 천안함을 실제로 보니까 마구마구 끊어져 있는 전선들과 움푹움푹 패어있는 철들까지 너무나 참혹했고, 전사하신 46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애기봉전망대도 가게 되었는데 북한이랑 너무나 가까운 것을 보고 놀라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생각이들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 보고 1사단 신교대대 천하제일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으로 군 부대에서 밥을 먹게 되었는데, 포크숟가락으로 먹으니까 신기하기도 했고, 처음엔 적응이 안됐지만 재미있었다. 또 내 주위 군대 갔다 온 친구들이 “군대 밥 맛 없어” 라는 말을 했었는데, 난 너무나 맛있었다.

 누가 군대 밥이 맛없대?!!! 밥 먹고 안보교육도 듣고 처음으로 점호라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기도 했고 군대에선 모든 것이 통일! 똑같이! 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우리 오빠도 이렇게 군대생활을 했겠구나 생각을 하니 그동안 오빠 군대 생활을 조금 무시하긴 했었는데 너무 미안했고 오빠가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군 2일차 - 6월26일] 도라전망대는 눈 앞에서 북한이 보였다. 개성이 보이기도 하였는데 도라전망대에서 개성공단 까지 12KM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그 다음엔 제 3땅굴을 가게 되었는데 북한이 기습작전을 목적으로 휴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에 굴착한 남침용 군사 통로이다. 진짜 길고 가팔랐다.

 제 3 땅굴을 보고 나서 1968년1월21일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한 침투로를 답사하게 되었다. 단장님께서 직접 설명해주셨는데 그곳에 모형물도 만들어 놓아 설명을 쉽게 이해되었고, 북한군이 정말 무섭게 느껴졌다.

 이 곳을 보고 난 후 점심을 먹고 행군을 하게 되었다. 햇빛이 쨍쨍한 줄만 알았는데 걷기 시작하자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을 주는 것처럼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 우리 등에 스칠때는 에어컨 보다 더 시원다는 것을 느끼며 계속 걸었다.

 중간에 휴식시간에 수박을 먹게 되었는데 그 때 먹은 수박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꿀 맛 이였다. 행군을 다 하고 28사단 태풍부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시설도 너무나 좋았고, 안보교육도 동영상과 함께 설명을 잘해주셨다. 그리고 나의 안보의식도 점차 살아남을 깨닫게 되었다.

 [행군 3일차 - 6월27일] 일반인이 함부로 갈 수 없는 태풍전망대에 올라가게 되었다. 태풍전망대에서도 바로 앞 에 있는 북한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군사분계선(MDL)으로 북한은 나무가 없고 우리 나라는 나무가 울창한 모습에서 너무나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은 쌀을 메고 산을 올라가고 물을 길러서 산을 또 오르고 작물도 심으면 자기 것이 아니라 공동작물이라 하여 공산당이 뺏어간다는 말씀을 듣고 북한에 안 태어난 것이 너무나 감사하기도 했고, 공산당이 너무나 못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북한 주민들이 저렇게 산다는 것에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 다음엔 필리핀군 참전비에 가서 참배를 하게 되었다.

 [행군 4일차 - 6월28일] 평화 전망대, 월정리역, 노동당사로 가게 되었다. 노동당사는 8.15 광복 후부터 6.25 전쟁이 일어나기 까지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잡혀와서 고문과 학살을 당하던 노동당사.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남아 있으며, 이 구조물은 철근이 없이 시멘트로만 지어졌다고 하였다. 노동당사를 보면 외형만 봐도 아픔이 묻어있는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행군을 마치고 청성부대로 향하게 되었다. 청성부대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활한 곳 중에 제일 좋은 군 부대 시설이였고, 1인1침대에 이날은 분대별로 PX도 이용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 했던 PX와는 많이 달랐다. 그냥 편의점 같았다. 그래도 PX를 이용하게 해주신 군부대 관계자분들과 단장님께 감사했다.

 또 이날 점호하기 전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되었다. 편지 쓰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동안 부모님께 잘못했던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죄송하기도 하였고, 부족함 없이 잘 키워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행군 5일차 - 6월29일] 이날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버스 이용이 하나도 없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계속 행군한 날이다. 오전부터 계속 걸으면서 발가락이 따끔 거리기 시작했다. 휴식시간에 양말을 벗어보니 그동안 잡히지 않았던 물집들이 발바닥 발가락 사이사이 잡히기 시작하였다.

 응급처방으로 밴드를 붙이고 휴식을 취한 후 또 걷기 시작하였다. 계속 따끔 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걸을 순 있었다. 계속 도로를 걷다가 산을 타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차가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응급차와 모든 차들이 따라 가지 않고 단장님, 부단장님, 스탭 분들과 대원들이 함께 산을 타기 시작하였다.

 산을 타기 전에 몇몇 아이들은 가방을 내려놓고 산을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순간 혹 해서 가방을 벗고 올라가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내가 국토대장정 하러 왔지, 나 자신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오기로 산을 타기 시작하였다. 너무도 더웠고 땀은 내 등을 타고 흘러 내렸다.

 중간 휴식시간에 흙바닥에 앉아 쉬는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산을 내려갈 땐 우리 분대원들이 하나 둘씩 정신을 놓고 노래를 부르고 개사하고, 구호를 외치며 단합하여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정말 미친 듯이 웃으며 즐겁게 내려갔던 것 같다.

 드디어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백골부대에 도착하게 되었고 사단장님과 박세환 회장님, 군악대 그리고 여러 군 관계자 분들께서 우리를 맞아 주셨다. 너무나 감사했고,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행군 6일차 - 6월30일]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비가와서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출발 준비를 하였다. 짐을 지퍼백으로 꼭꼭 싸메고 침낭도 가방 안으로 넣고, 가방 방수 비닐 커버도 씌우고 우비입고 분대별로 출발하게 되었다.

 비가 정말 많이 내리는데 기분은 색다르고 좋았다.^^ 말고개도 넘고, 중고개도 넘어 갔다. 가는 중에 빗줄기가 점점 약해졌다. 쉬는 시간엔 장기자랑 연습도 틈틈이 하고, 우비입고 사진도 찍고 즐거웠다.

 [행군 7일차 - 7월1일] 오전 행군 할 때 우리 분대가 맨 끝에서 행군을 시작하였따. 처음으로 갈 때는 몰랐는데  맨 마지막에 있으니 속보하게 되고 따라가기가 조금 힘들었다. 행군하면서 3소대 대장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틀어주셔서 기분 좋게 행군 할 수 있었다.

 화천대교에서 휴식을 취하였는데 사진도 많이 찍고 돌도 누가 멀리 던지나 시합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휴식을 하고 나선 우리 분대가 맨 앞으로 이동하여 행군을 하게 되었다.

 행군하고 7사단 보충대에서 점심을 먹고 643 참전비에 들렸는데 6.25 참전유공자 분께서 직접 오셔서 그 때 고지전을 설명해주셨다. 3만명이 화천 여기서 죽었고, 시체 냄새가 지독해서 코에 마늘을 넣고 다니셨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3만명이라는 숫자의 시체가 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나라 위해 목숨 받쳐 나라를 지켜주신 그분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묵념을 드린후 우린 분대별로 자유행군을 시작하였다. 가면서 폭포도 보고 길바닥에 앉아 쉬기도 하고, 노래 부르기도 하고 구호도 외치고, 오빠들이 스탭으로 변신하여 행군하기도 하고 다른 팀 추월도 하며 즐겁게 행군을 하기 시작하였다.

 목적지는 상승회관이였는데 30분 일찍 도착해서 쉬고 모든 팀이 다 올 때 쯤 다시 7사단으로 행군을 하기 시작하였다. 7사단에서 사단장님께서 직접 안보교육을 해주셨는데 우리 오빠가 여기서 군 생활을 했다하니 뭔가 새롭기도 했고 느낌이 달랐다.

 [행군 8일차 - 7월2일] 평화의 댐까지 걸어가는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산과 강 그리고 야생동물 보호구역까지  계속 걸어가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평화의 댐에 도착해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평화의 댐은 북한의 임남댐이 무너지면 서울이 삽시간에 홍수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 졌다.

 이 댐을 만들기 위해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여러 대통령을 거쳐 18년 만에 완성된 댐이다.
평화의 댐에 있는 세계평화의 종은 세계 30여개 분쟁지역의 탄피를 녹여 만든 종이다. 위에 비둘기 4마리가 있는데 이중 한 마리 반 쪽 날개가 없었다.

 반 쪽 날개는 따로 전시되어있는데 이는 통일의 날, 떼어진 1관을 추가하여 세계 평화의 종을 완성한다 하였다. 다보고 점심은 처음으로 전투식량을 먹게 되었다. 끈만 잡아당기면 20분 정도 발열하여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난 짜장밥을 먹게 되었는데 신기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맛있었다.

 [행군 9일차 - 7월3일] 양구에 있는 두타연 관광지를 산책하게 되었다. 두타연은 산 속 길을 만들어 산책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옆은 지뢰들이 있어 조심해야 하는 곳이다. 숲속 길, 생태, 계속, 동굴 너무나 예뻤다. 역시 자연이 최고 아름다운 것 같다. 피의 능선 전투 전적비에 가서 묵념도 하고 제 4땅굴로 향했다.

 박물관도 보고 영상도 보고 제 4 땅굴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제 4땅굴은 동부전선에서 최초로 발견한 남침용 땅굴이다. 군사분계선 1.2KM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땅굴은 남한에서 찾은 4번째 땅굴이다. 10년동안 매일 3M씩 팠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땅굴과 다르게 북한이 땅굴을 파면서 모노레일을 설치해 무기나 암석을 싣고 오기도 하고 땅굴 벽에 글씨도 써놓고, 구멍을 뚫어 놓기도 하였다.  직접 모노레일을 타봤는데 소리가 시끄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안에를 직접 보면서 북한이 겉으론 평화통일 하자고 웃지만 속을 알 수 없으며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증거였다.
 
 [행군 10일차 - 7월 4일] 마지막 행군이라니 너무나 아쉬웠다. 벌써 시간이 지나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니 너무 아쉬웠다. 이제 우리에겐 몇 KM 걷는 건 아무 문제없는데 이렇게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저녁에 8군단에서 전야제를 하였는데 즐겁게 놀기도 하였고 3소대끼리 회포를 풀기도 하고 마지막엔 스탭분들과 포옹하고 대원들과 포옹을 하는데 어찌나 슬프던지...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계속 옆에서 대원들과 함께 자고 씻고 행군해야 될 것 같은데 끝이라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

 [행군 11일차 - 7월5일] 해단식! 그동안 아프지 않고 끝까지 행군한 우리 7분대에게 너무 고맙고,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우리는 간다! 젊음을 휘날리며!

 대한민국은 우리 손으로 지킵시다!

 이번 휴전선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을 하면서 제가 알고 있지 못했던 안보의식을 알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나라는 우리의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며 우리나라 안보의식에 깨어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해 전사하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을 마치며

 이번 2012년에 한 일중 가장 잘한 일 인 것 같다. 또 정말 추천해주고 싶은 활동 중 하나다. 안보의식도 깨우치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3 소대 7분대! (처음엔 오빠인줄 알았지만 알고 보면 귀여운 막내 강인이, 하이개그로 동생들을 재밌게 해준 형주오빠, 팀의 분위기 메이커 진한오빠, 뒤에서 묵묵히 동생들을 지켜 준 형락오빠,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다솔오빠, 팀의 에너자이저 다예, 최강인기 아이유 송미, 미래 여군을 꿈꾸는 려진이, 나의 정신적 지주 한나) 10박11일 당신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뚝뚝하시지만 뒤에서 챙겨주시던 박대수 단장님, 온화한 미소와 대학생 감성을 지니신 송필근 부단장님, 총대장님, 모든 스탭분들과 군 관계자분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 파이팅!!!(Konas)

 박예나(배화여자대학교)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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