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군 노병의 바람
Ⅰ. 국격(國格) 신장의 장면
1. 미국 연방의회에서 있었던 일
2013년 5월 8일(현지 시각), 미국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우리의 국격(國格)을 높이면서 대통령의 품격(品格)을 높이 올리고, 전 세계에, 활기차고 유구한 역사와 미풍(美風)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을 알린 장면이 있었다.
첫 미국 방문길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이, 미(美) 국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6․25 전쟁 참전용사로서, 국회의원인 미국인 “존 코니어스” 등 네 명의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자, 해당 의원들은 기립했고, 의원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는 아름다운 장면이 보도된 바 있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이 장면을 접하면서, 박대통령의 뜻밖의 훌륭한 언행에, 마음속으로 찬사를 보냈으며, 전 세계 지구상 인류가 이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높고 훌륭한 국격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기뻤다. 전에 없었던 이러한 장면은,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것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국가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2. 국내에서는 왜 이러한 장면을 볼 수 없을까
그런데, 우리 국내에서는 왜 이러한 아름답고 뜻있는 장면을 볼 수 없을까. 잃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그리고 되찾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선열과 애국지사, 그리고 호국영웅들이 희생되었는데, 국외에서보다 국내에서 먼저 그들의 공적을 찬양하고,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먼저 있었어야 할 장면이 아니었겠는가. 국회는 고사하고, 8․15 광복절이나 6․25 기념행사에서나마 진작 보았어야 할 장면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오래전에는 이런 장면도 있었다. 8․15 광복절 기념행사장 단상(壇上)의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애국지사님들의 희생에 국민과 더불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라는 기념사를 읽고 있는데, 당사자인 애국지사들은 단하(壇下) 식장에서, 모든 이들의 관심 밖에서, 앉을 좌석조차 얻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무대 위 단상에는, 유명․무명의 현관(顯官)들의 위풍당당한 모습만 보일뿐인 웃지 못 할 희극적이고도 씁쓸한, 그리고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의 장면이 연출되고 있을 뿐, 행사 당사자인 그들은 자리 찾기에 바빴다.
관심 밖에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애국지사들의 오늘의 실태는 어떠한가. 100여명 내외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 중, 국외서 투쟁한 광복군의 경우 52명(2013. 6월 현재)이 생존해 있을 뿐인데, 노령과 병마로 그중 겨우 20여명 내외가 기동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지난 독립투쟁시의 나라사랑․독립정신을 잊지 않고 이를 계승, 국가발전에 기여코자 노력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러한 실상을 돌아볼 때, 국가에 기여한 사람들에 대한 대우가 국내외를 가려 다르다는 것은, 안타깝고 모순된 일이며, 우리 스스로를 격하시키고, 역사를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후 세대(後 世代)에 대한 국가관 형성에도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을까.
Ⅱ. 되돌아 본 우리의 자화상(自畵像)
나라를 위한 희생은 같았는데, 나라 밖에서는 찬양되어야 하고, 나라 안 자국민은 관심밖에 있어야 하는 현상은,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무관심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쓰라리고 아팠던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오늘의 열매는 어제의 결실이고, 내일의 씨앗임을 감안할 때, 지난 국난 시의 독립운동에 종사했거나,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희생한 호국용사의 나라사랑, 독립정신을 찬양하고, 또한 잊지 않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를 외면한데서 초래된 현상(국내 경시나 무관심)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오늘의 지도급 인사들의 망발에 가까운 언행들에서도,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 외면과 무관심, 그리고 흐트러진 사회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잃은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독립군, 광복군이 과대평가되고 있다거나, 독립군은 소규모 테러단체 수준이라고 폄훼(貶毁)하면서, 청산리 대첩도 독립군 규모는 겨우 1600명으로서, 일본군으로부터 항복을 받거나 그들을 궤멸시킨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 절하한 지식인(학자)이 있는가 하면, 나라 잃은 것도 원통한데 “일본에 의한 한국 합병이 러시아에 흡수된 것보다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한 교수도 있다.
또 “일제시대가 우리에게 행운이었고 축복이었을지언정,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일 수는 없다”고 망발한 젊은 평론가가 있는가 하면, 바다 건너 일본 땅에 가서 고국을 향하여 “반일(反日)을 국시(國是)로 하고 있다”느니, “한국은 반일교육(反日敎育)이 철저해서 폐해가 많다”느니 하면서, 일본에 아첨하고 고국을 팔아 일본인의 환심을 사는 문인(文人)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라의 미래인 학생들의 나라사랑 정신도 흔들리고 있는데, 최근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서울 지역 남녀초등학생 100명중 애국가 1절도 제대로 못쓴 학생이 64명이나 되었다고 했고, 지난 현충일을 맞아서는 “죽은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좋지 않은 날”, “학교 안 간다. 술 마시자.” 정도로 인식하고, 먹고 노는 공휴일쯤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많았다고 한다.
좀 오래된(10여 년 전) 통계이지만, 서울대 사회학과 홍두승(洪斗承) 교수가 주요 6개 대학 학생 1719명을 대상으로 “해외에 있을 때 국내에서 전쟁이 나면 귀국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귀국하지 않는다(16.9%)”, “귀국하지 않으려 노력한다(39.2%)”로 56%, 즉 절반이상이 국가 비상시 귀국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충격적이었다(오늘에 와서는 많이 호전되어 이 수치가 낮아졌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지난 연말 학부모, 중고생 3명과 회식할 기회가 있었는데 “광복군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중학생 1명만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와 같은 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에서 연유된 것들임을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역사 외면과 무관심, 그리고 이기적 풍토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공적(功績)이나 유적, 기념물 보존에도 인색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상이다. 외국에서의 한 예를 보자. 수년전 영국에서 본 놀라운 사실은, 어느 지방 소도시 작은 공원 내 아담한 기념비에, 이 고장 출신 제1․2차 세계대전 전사자와 심지어 6․25 참전 전사자의 이름이 기념비 동판에 양각되어,
그 나라에 대한 공헌을 영원히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을 때, 우리의 기념물들이 오버랩 되면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러한 기념비는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고, 런던 시내에서도 목격되었다. 영국이 세계를 제패한 저력의 일단(一端)을 본 것 같아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지.
세월이 흘러 광복군을 위시한 독립유공자, 그리고 호국용사들도 노쇠하여 사라져가고 있지만, 나라사랑․독립정신만은 누구 못지않은데, 그들에 대한 관심은, 각박한 오늘의 사회풍조에 가려, 그 존재감을 잃어만 가고 있다. 어느 젊은 50대 교수가, 오늘을 있게 한 노인들을 향하여, 사회에 부담되는 잉여인간(剩餘人間)들이라고 망발한 것과 같은, 오늘의 부정적인 여러 사회상도, 이러한 역사 외면, 무관심에서 연유되어 표출된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Ⅲ. 우리의 자세와 노병의 바람
만일, 국내에서도 나라를 위해 공헌한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여러 기회를 이용한, 이와 같은(미국, 영국에서 있었던 장면과 같은) 현창(顯彰) 행위를 볼 수 있다면, 오늘날과 같은 어지러운 사회상을 정화도 할 수 있고,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정서적 안정과 희망, 그리고 자부심을 일깨워주는 동기부여(動機附輿)의 기회로 삼아, 무언(無言)의 교육적 효과를 얻어, 나라사랑 정신 앙양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올바른 국가관 형성은 강요에서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인데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오늘의 어려운 환경 하에서,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지난 이야기를 되돌아보고자 하는 근원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에 대비하고자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에 무관심하다. 옳고 바르게, 그리고 제대로 보지 않으면,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작은 것부터, 모순된 것을 바로잡는 데서부터, 하나하나 실천으로 옮기는 것으로 출발하여야 한다. 한두 가지 예를 들면,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고 반성과 교훈의 기회로 삼아야 할 국치일(國恥日) 8월 29일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는데, 정부, 정치권, 사회 어디서도 관심 갖고 자성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광복회가 근래 간략한 자성(自省) 행사를 갖고, 역사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하고 있을 뿐이다. 이날은, 우리로서는 가장 잊지 말아야 할 치욕(恥辱)의 날로 받아들이면서, 여기서 교훈을 얻어 앞날을 도모해야 할 날로 자리매김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대한민국은 1919년 4월 11일 건국하였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부를 재건(再建)하였는데(여러 거증(擧證) 자료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날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일부의 주장은, 역사를 왜곡, 외면하면서 역사를 제대로 보지 않는데서 연유된 현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건국일(建國日)은 1919년 4월 11일이다.
그뿐 아니라, 10월 1일 국군의 날 문제도, 역사적 관점에서나,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조정되어야 할 것임을 수없이 거론하였음에도, 관계당국은 묵묵부답이다.
그리고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자발적인 나라사랑 정신의 실천과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서도, 국가는 독립투쟁이나 호국의 흔적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 방편으로 생존해 있는 애국지사나 호국용사를 활용하는, 살아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활자화된 교과서나 책자와 같은 죽은 교재로서는 기대하는 효과가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노쇠하였지만 독립유공자나 호국용사들도 나라사랑 독립정신 앙양에 앞장 설 것이고, 목전(目前)의 손쉽고 작은 것부터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성공의 첩경이다.
쓰라리고 아팠던 지난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거나 얻지 못하고, 또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다면—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우리의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나(우리)만이라도 최선을 다하여 정도(正道)로 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우리의 앞날은 밝고 희망차다. 어느 한 광복군 노병의 단상(斷想)이고 바람이다. (konas) 출처: 광복군 9호
김 영 관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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