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수기⑥]" Freedom is non free"
6. 25 전쟁 62주년을 맞이하여,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에서 주관하는 10박 11일 일정의 ‘제5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을 출발하기 전, 저녁식사에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앞으로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짊어져야 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예전 70〜80년대와 비교하여, 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
세계역사상 유래 없는 급속한 성장으로, 195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지만 오늘날 사회, 경제,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이제는 후진국을 지원해주는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자리 잡고 인정받는 한국. 한편, 일부 무능하고 편협한 사상을 가진 일부 종북인사들은 모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의 주적이 분명한 북한을 추종하며,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애국가를 우리나라의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불순세력이 국회에까지 입성한 현재의 엄중한 안보상황 속에서, 올바른 국가관과 안보관의 확립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갈 20대 청년의 기본적인 소양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나는 조국을 위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였고,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어 이번 대장정을 지원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북한의 남침인 6.25 전쟁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귀중한 목숨을 초개같이 희생 하셨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분들의 뜨거운 애국 정신이 헛되지 않기 위한 바람에서 이번 대장정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6월 24일, 서울 재향군인회 본관에는 국내외 여러 대학교에서 선발된 많은 대학생들이 모였다. 그곳에는 14대 1의 경쟁률을 당당히 뚫고 대원으로 뽑힌 140여명의 향군대원들이 있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은 대학생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있었고, 그날은 앞으로 10박 11일 간의 결코 짧지 않은 여정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할 4분대원들과의 첫만남 이기도 했다.
해병대 자부심으로 무장한 유진이 형과 대장정을 하기도 전에 이미 피부가 많이 타서 거뭇거뭇한 기열이를 비롯해, 나를 포함 나머지 8명의 대원 모두가 아직은 서로를 알아가는 어색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서울 재향군인회 본부에서의 OT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자리를 옮긴 우리 4분대 (팀명: 불4조) 대원들은 건국대학교 근처에서 간단히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다음날에 있을 행군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처음의 어색함을 녹일 수 있었다.
6월 25일, 용산전쟁기념관에서 6. 25 전쟁 62주년 정부행사와 함께 출정식을 통해 대장정의 서막을 올린, 나를 포함한 총 140여명의 향군대원들은 첫날의 행선지로 호국영령들의 뜨거운 조국혼이 서려있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참배를 마친 후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단과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그리고 김포 애기봉전망대를 방문했다.
엄중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현충원 참배 속에서, 나는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호국영령에 대한 깊은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한편 현충탑 내부에 설치된 위패봉안관을 둘러보던 중, 6. 25전쟁으로 죽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시던 백발이된 어머니의 애닯은 모습은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전쟁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또 북한군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하여, 국군의 사명감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 공군으로 전역하신 아버지께서 늘 자랑스러워 하시던 대한민국 보라매(공군)의 기상. 수원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는 우리의 하늘을 지켜주었던 퇴역한 전투기 그리고 폭격기 등을 볼 수 있었고, 또 직접 탑승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공군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과 함께 대원들과의 기념사진을 남겼다.
대한민국 공군은 북한군의 도발에 대비해 전투기 조종사를 비롯해 모든 장병들이 적시적소에 항공 타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항시 대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공군을 자랑스러워 하시는지 공감할 수 있었다.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천안함이 전시되어있는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의 방문은 평생 기억에 남을 일이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두 동강난 함정을 보는 내내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당시 함정의 침몰과 함께 산화된 것으로 추정하여 아직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장병들이 있다는 슬픈 사실에 현장에서 사진을 찍어 기념으로 남긴다는 사실조차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 느껴졌다.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고귀한 목숨을 서해에 바치신 천안함 장병이여 편히 잠드소서...
6월 26일, 대장정의 2일차. 1사단 신교대대에서 꿀맛 같은 단잠을 자고 난 후, 그날의 아침은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 아침 체조시간, 내가 아직은 군대시설이 낯설어 불편해하는 여자대원들과 일부 남자대원들의 불평을 들으며 이를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전방부대인 3사단 사령부에서 군복무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만에 맛보는 병식(兵食)은 더없이 맛있었다. 특히, 일명 군대리아를 처음 먹어보는 여자대원들은 그 맛과 영양에 대해 다들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이미 전역한 남자대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알려주느라 분주하였다.
더없이 보기 좋은 아침식사가 아닐 수 없었다. 향군대원들을 위해 편의를 제공해주신 군장병과 관계자 분들께 감사를 전한 후, 그날 우리는 도라전망대, 제3땅굴, 1.21 침투로를 견학하고 첫 행군을 했다.
1979년 10월 17일 당시 우리나라 군인에 의해 발견된 제 3땅굴은 북한이 불법 남침을 자행하고자 했던 장소다. 68년 1월 21일 북한의 김신조 무장 게릴라 일당이 청와대를 기습하고자 한지 10년 뒤 발견됐다.
6. 25 전쟁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무력남침에 대한 야욕 그리고 도발을 일으키는 북한군과 북한정권에 대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경계심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땅굴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진위여부를 떠나서 현재 이 땅을 굳건히 지켜주는 국군장병들에 대한 감사와 아울러 나를 포함한 예비역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도 내가 편히 잘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내 친구, 형, 동생이 불철주야(不撤晝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기 때문이다.
6월 27일, 대장정 3일차.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을 성공적으로 격파하였던 율동리전투(1951.4.22~4.23)에서 승리한 필리핀군의 전공과 전사자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건립한 필리핀군 참전비에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먼 이국 땅에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을 해외 참전용사들에 대한 깊은 감사를 드렸다. 하지만 그분들의 노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하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안타깝고 미안했다.
북한군과 북한정권은 그들의 불법남침으로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넘어 먼 타국 땅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을 유엔 참전국 용사들과 그들을 사랑했을 가족들의 아픔을 어떻게 위로할 것인가!
국립현충원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자식의 이름이 새겨진 차가운 위패를 어루만지며 흐느끼던 모습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아니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프건만, 우리는, 나는 어쩌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그리고 자식을 잃고 흐느끼던 어머니의 아픔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럽고 숙연해졌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는 종전이 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휴전상태에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6월 28일, 대장정 4일차. 한국전쟁 이전, 서울과 원산을 오고 가며 승객을 실어 날랐을 열차는 전쟁의 상처로 뼈대만 간신히 남아있었다. 경원선의 간이역이었던 월정리역(月井里驛)은 최초 비무장지대(DMZ) 안에 위치했지만, 전쟁 이후 현재 강원도 철원군 흥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鐵馬는 달리고 싶다!’ 라는 문구만이 이곳에 남과 북을 잇는 열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언젠가 이 길을 통해 열차가 다시 달리는 그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해방 후 북한의 지배하에 있었던 철원지역에 위치한 노동당사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있는 현재의 구조물만이 과거 조선노동당의 당사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건물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수많은 고문과 학살이 자행되었다는 음지의 지하실에는 냉기만이 감돌아 그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공산당이 싫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의 애한이, 전쟁기간 폭격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건물뼈대만 이라도 유지되도록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군 장교의 설명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대장정 기간 동안 각 시도별 재향군인회와 여성회에서 많은 준비를 해주셨는데, 그 중 노동당사 앞에서 먹었던 시원한 과일화채가 기억에 남는다. 한여름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에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가는 우리들에게 가뭄의 단비마냥 고마운 분들이었다. 분대원들끼리 둘러앉아 먹는 화채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달고 맛있었다. 화채와 함께 분대원들간의 친목도 더욱 두터워질 수 있었다.
6월 29일, 대장정 5일차. 북한이 지금도 유일하게 무서워한다는 부대이자 전우애와 기백으로 뭉친 부대. 필사즉생(必死則生) 골육지정(骨肉之情)의 정신으로 단결된 육군 제3보병사단(백골부대) 방문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대장정 일정 중 가장 고대하고 방문하기를 기다려왔던 백골부대는 2008년부터 2010년 12월까지 나의 젊음과 땀을 바친 곳이다. 또한 신병교육대대는 분대장 교육 훈련병으로서 1주간의 훈련을 받았던 곳이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님께서도 직접 부대의 전통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셨듯이 3사단, 그곳 백골에 나의 젊음을 바치기에 아깝지 않는 부대임이 분명하다.
저녁 레크리에이션 활동과 부대홍보 동영상시청은 내가 분대장훈련병으로 수료식을 했던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행군 마지막 날에 있을 장기자랑 순서를 정하기 위한 신문지게임, 입으로 종이전달하기 게임은 처음 우려와는 달리 모두가 열심히 참여하여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쉽게 4분대는 초반 신문지 게임에서 떨어졌지만, 떨어지고 난 후에도 어떻게 하면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다른 대원들과 함께 고민하는 것도 신나는 경험이었다. 또한 3사단 신병교육대대를 가기 위해 힘든 산악행군에도 불구하고 낙오자 없이 모두가 군악대 연주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단결시키기에 충분했다.
6월 30일, 대장정 6일차. 비가 많이 내렸다. 금성지구전투전적비를 향해 올라가는 길은 말고개(馬峴)라고 불리는 곳으로 고개가 높아 말을 몰고 가던 사람들도 정상에서 쉬어가곤 했다는 유래가 전해질 정도다.
쉴새없이 퍼붓는 굵은 빗줄기를 피하고자 우의를 덮어쓰고, 언덕에서 내려오는 거센 물줄기도 피해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처음에는 신발과 바지가 전부 젖어 짜증도 나고 귀찮았지만, 대장정이 끝난 지금 돌아보건대, 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그곳 금성지역에서 적군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치열한 공방을 펼쳤던 선배 용사들을 생각하니 어린아이 마냥 칭얼대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1952〜53년 휴전회담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1953년 6월 10일부터 약 8일간에 걸쳐, 중공군은 23만에 달하는 군대로 금성지역에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1만에 달하는 아군의 피해가 발생했지만, 2만이 넘는 적을 물리쳤고 승리할 수 있었다. 이곳 금성지구전투전적비는 당시 국군의 대승(大勝) 공적과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그날 저녁 젖은 신발을 말릴 수 있도록 전투화 건조기를 지원해주신 15사단 신병교육대대 (50연대 1대대) 장병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7월 1-2일, 대장정 7일차. 밤새 뽀송뽀송하게 마른 운동화를 신고 화천대교를 지나 파로호를 따라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파로호를 따라 정성스럽게 다듬어진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간에는, 지난 6일간 힘든 행군을 함께 헤쳐나간 분대원, 소대원, 그리고 140여명 모두가 즐겁게 기념사진 찍는 시간을 보냈다.
피의능선 전적비에서는 올해 85세이신 한국전쟁참전 할아버지께서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셨는데, 약 3만 5천 여명에 달하는 북한군과 아군 희생자의 핏물이 앞의 강물을 뒤덮었다고 말씀 하셨다.
시체 썩는 냄새가 너무 심해 당시 앞을 지나가려면 코에 마늘을 넣고 지나가야 했다고도 하셨다. 62년이 지난 지금, 지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푸른 숲과 나무가 울창한 그곳에서, 당시 피비린내 나는 공방전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참전 할아버지의 설명은 왜 내가 이번 대장정을 참가하였고 앞으로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우리 젊은 세대들을 걱정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을 보시더니 이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을 다시 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할아버지의 진심이 통할 수 있도록 나를 포함해 대원 모두가 이번 대장정을 마치고 국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장정 8일차. 평화의 댐을 향해 뻗어난 길은 피로도 금새 잊게 할 만큼, 자연 본래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절로 흥에 겨워 노래가 나오면, 모두가 따라 부르며 행군을 했는데, 덕분에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중호우시 북한 임남댐(금강산댐)이 붕괴되면 서울이 잠길 우려가 있어 홍수 조절용으로 건설을 하였다 한다. 한국에서 가장 높다는 댐의 높이는 무려 125m 나 되고 최대저수량만 26억 3000만t이다.
평화의 댐 옆에는 평화의 종과 그 위에 한쪽 날개가 잘린 비둘기상(象)이 있는데 한반도가 통일 될 시에 현재 떨어져있는 한쪽 비둘기 날개를 이어 붙여 종을 친다고 한다. 머지않아 평화의 종소리가 한반도 전역에 울려 퍼지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간절히 빌었다.
7월 3〜5일. 제 4땅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 26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북한군의 남침야욕을 여실히 보여준다. 땅굴이 발견된, 흔히 ‘펀치볼’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형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양안전투(펀치볼전투, 피의능선전투 등) 의 격전지였다고 한다.
한 시간에 북한 특수병력 3만 여명을 투입시킬 수 있는 이 땅굴이 조기에 발견되지 않았으면 현재 안보가 보다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땅굴에 대한 시청각 설명을 듣는 내내 우리 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 땅굴의 발견과 이후 차단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충견 헌트(Hunt)를 기리는 상(象)을 보면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나 동물이나 한마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젠 백발이된 참전 할아버지 그리고 해외 21개국에서 초청된 참전용사들의 힘찬 응원의 힘을 빌어 출발했던 6. 25 전쟁 62주년 제 5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이 끝났다.
정부행사에 청년 주인공이 되어, 6. 25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약속하는 자리에 서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던 그날의 재현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대장정 기간 동안 보고 느꼈던 사실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드는 이 나라의 훌륭한 일꾼이 되고자 한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의 벽면에는 다음의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Freedom is non free.”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한국전쟁에 참가하여 채 꽃도 피우기 전에 목숨을 바치셨던 수많은 참전용사 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자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우리가 오늘 향유 하고 있는 값비싼 자유에 보답하는 길은 열심히 노력하여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 높이고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더욱 부강하고 아무도 쉽게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다음 달이면 나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학기 준비와 아울러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늘 조국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또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작게는 나의 꿈을 실현하고 크게는 국익에 일조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하듯, 이번 대장정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바를 바탕으로 외국 친구들에게 우리나라를 제대로 알리고 이해시키는 그런 작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애국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닌 말없이 작은 일부터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리라.
끝으로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0박 11일 내내 성공적인 대장정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주신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박세환 회장님을 비롯하여 대장정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박대수 답사단장님 외에도 많은 관계자 분들께 뜨거운 박수와 함께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대한민국 재향군인회가 국가와 국토수호의 든든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여 더욱 그 역할을 굳건히 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2012년 여름, 140인의 젊은이들에게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신 대한민국 재향군인회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고마움을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제 5회 대학생 휴전선·전적지 답사 대장정에 참여한 140명 대원 모두 이번 대장정으로 한층 성숙되고 강한 젊은이로 다시 탄생하길 빌며 그들 모두의 앞날에 영광만 함께 하길…
파이팅!!!(Konas)
김휘(미네소타주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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