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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8) 혼자라도 괜찮아!

Written by. 정수정   입력 : 2025-09-02 오후 3: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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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5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소감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참가계기 - 혼자라도 괜찮아!

나는 교직이수를 한 이후로 ‘재밌는 선생님’, ‘학생들한테 해줄 이야기 많은 선생님’을 나의 대학생활 모토로 삼았다. 그러다 ‘국토대장정’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했다. 아 이건 나한테 엄청난 콘텐츠 감이다! 나 스스로의 가능성과 한계를 시험해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국토대장정은 내 체력, 인내심, 끈기를 키우고 사회성도 챙길 수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프로그램처럼 보였다. 친구랑 같이 신청했고 국토대장정 가서 남자친구 만들어와라 라고 농담도 했다. 그런데 출발 이틀 전, 친구가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됐다고 했다. 하루 종일 고민했다. 갈까 말까, 혼자서 괜찮을까. 그러다 결론을 내렸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게 바로 경험이고, 이것 또한 콘텐츠다 라는 생각으로 혼자서라도 씩씩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지방에 살아서 집결시간에 맞추려면 전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이미 다녀온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 이것저것 짐을 챙기고, 가는 길에 친구들에게 나눠줄 간식도 사러 갔다. 그런데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 반, 두려움 반, 그리고 아주 약간의 설렘이 더해져서, 전전날 밤은 거의 뜬 눈으로 보냈다.

 ▲ 15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1일차 : 걱정 반, 설렘 반!

아빠는 평소보다 더 많은 잔소리를 하셨고, 나는 묵직한 베낭을 메고 양재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올랐다. 그런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지하철을 반대로 탄 것이다. 이거 징조가 좋지 않다 싶었지만,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고, 재향군인회 빌딩에서 명찰을 받아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기 전, 건물 밖으로 나오니 재향군인회 직원분들께서 모두 나와 우리를 응원해주고 계셨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지만, 우리가 시작하는 이 여정을 누군가가 응원해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해졌다. 국토대장정을 힘차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기운이 생겼다. 버스는 고성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이삭토스트가 간식으로 나왔지만, 긴장감 탓에 한입도 넘기지 못했다.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첫 일정은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조 편성과 함께 대장정 동안 사용할 물품을 받았다. 가방, 모자, 티셔츠, 정글모자, 로카 반바지까지 웰컴키트가 너무 실했다. 100명이 같은 복장을 입고 일주일을 함께 한다니 낯설면서도 교복처럼 소속감이 드는 느낌이었다. 사실 적어도 ‘오늘 뭐 입지?’는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좋았다. 특히 적당한 길이의 로카 반바지는 최고 애정템이다. 자기소개와 조 편성을 마친 뒤, 다음 날 있을 출정식 예행연습에 들어갔다. 거수경례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이거 진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긴장했고, 동시에 이 여정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숙소에 도착한 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우리가 묵을 곳은 금강산 콘도였고, 창밖으로는 고성 앞바다가 펼쳐졌다. 조용하고 고요했다. 핑크빛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 그 사이로 노란 가로등과 바위와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처음 만난 낯선 얼굴들과의 거리도, 내 안의 긴장감도 잠시 옅어졌다. 바닷가 산책로에는 벌써 친해진 듯 무리를 지어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조용히 걷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이름도 다 모르는 사이였지만, 같은 일정, 같은 숙소,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불안과 기대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씩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내일은 진짜 시작이다.

2일차 : 첫 행군, 그리고 아픈 역사를 마주하다

기다리고 기대하던 국토대장정 2일 차 아침이 밝았다. 출정식 당일 아침까지도 완벽한 출정식을 위해 많은 연습을 했다. 리허설을 마친 뒤, 호림유격대 전적비를 참배했다. 전날 밤, 잠깐 검색해본 기억이 떠올랐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북한의 무장 게릴라를 막기 위해 이 지역 청년들이 ‘호림유격대’라는 이름으로 조직돼 적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단순하고도 단단한 마음으로, 총도 부족했고, 군번도 없었고, 이름조차 남지 못한 채 싸운 사람들이었다. 그중엔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후 버스를 타고 6.25 전쟁체험 전시관으로 이동했다.다큐멘터리로만 접했던 전쟁이, 녹슨 철모와 빛바랜 사진들을 보니 조금 더 실감 났다. 문득 ‘내가 저 시절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관람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717OP에 도착했다. 날씨가 흐렸지만, 금강산과 구선봉, 해금강, 북한군 초소까지 희미하게나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일상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가슴을 눌렀다. 점심은 통일전망타워에서 조별로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아직 다들 덜 친해져서 그런지 식사 내내 조금 어색했다. 식사 후엔 본격적인 출정식이 진행됐다. 가슴이 웅장해졌다. 국간사 입학식 때의 입학 선서, 동생의 훈련소 수료식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오랜만에 해본 경례도 제법 잘한 것 같아 괜히 뿌듯했다. 재향군인회 관계자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하룻밤을 묵을 부대로 이동했다. 이번 국토대장정의 첫 번째 행군이었다. 조별로 줄 맞춰 걸었다. 많이 더울 줄 알았지만, 나무 그늘 덕분에 생각보다 시원했고 흐린 날씨가 오히려 걷기에 좋았다. 푸른 산과 나무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학교 다닐때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과 맑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할 무렵, 드디어 부대에 도착했다. 도착 후 간단히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은 뒤, 민간인 신분임에도 PX 이용이 허용되어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다. 이후 강당에 모여 안보교육을 들었다. 향군 안보교수 강동화 선생님께서 1시간 동안 강의를 진행해주셨고, 그중에서도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군부대 내무반에서 잠을 자게 될 줄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 방문한 부대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자기 전, 수아와 함께 점호 연습을 하며 ‘내가 국토대장정에 온 건가, 군대 체험하러 온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7일간 국토대장정은 군대 못지않은 규율과 생활 방식을 계속 되었다

3일 차 : 닭갈비의 재발견과 전투기 실물영접 한 날

학기 중엔 7시에, 방학 땐 9시에 일어나던 내가 새벽 6시에 눈을 뜨다니, 고3 때도 이러진 않았다. 전날 밤엔 ‘과연 내가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기상 시간이 되니 의외로 상쾌한 아침이었다. 낯선 숙소에서 뒤척이며 잔 탓에 몸은 묵직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날 원래 일정은 내린천에서 래프팅을 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전날부터 아침까지 부슬부슬 비가 내려 결국 취소되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 싫어하는 친구들은 오히려 좋아했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춘천 소양강댐 둘레길을 걸었다. 호수 위로는 물안개가 잔잔하게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겹겹이 이어지는 산 능선이 파도처럼 펼쳐졌다. 유리조각처럼 맑은 물빛, 댐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 길, 한 걸음 한 걸음이 눈을 맑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조원들과 수다 떠느라 자꾸 대형이 흐트러졌지만, 어제까지의 어색함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점심으론 숯불 닭갈비를 만났다. 그동안 철판 닭갈비만 먹어봤던 내게, 숯불 특유의 불향이 배인 닭갈비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겉은 살짝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서,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에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랑 춘천에 오면 무조건 여기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식사 후 버스는 다시 출발해 원주에 위치한 공군 제8전투비행단에 도착했다. 이곳은 예전에 남동생 면회 때문에 몇 번 와본 적 있는 곳이었지만, ‘대원’이라는 신분으로 들어오니 규모에 압도되었다. 입이 절로 벌어졌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격납고였다. 높은 천장 아래, 수리를 기다리는 항공기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다. 주전공이 기계공학과인 나에게 항공·방위 산업은 진로 2순위인데 매년 에어쇼를 보러 다녔지만, 전투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근처에 위치한 블랙이글스 홍보관에서는 팀의 창단 연혁부터 기체 설명, 파일럿 선발 과정까지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주전공을 살린다면 언젠가 이 분야에서 나도 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식사는 또 한 번 감동이었는데 밥도 맛있고 반찬도 맛있었다. 하지만 곧 이어질 군가 레크리에이션 시간을 생각해 식곤증을 피하려고 일부러 조금만 먹었다. 예전에 국간사 가입교 때 불렀던 「진짜 사나이」 멜로디가 어렴풋이 기억났는데, 이번엔 여러 대원들과 어깨를 맞대고 함께 부르니 그 곡이 전혀 다르게 들렸다. 군가가 언젠가 국악처럼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잠시 스쳤다.

4일 차 : 흐려도 괜찮아

사실 나는 오늘만 기다렸다. 왜냐면 케이블카가 제일 궁금했기 때문! 아침, 춘천역을 잠시 들려서 비콘을 해제했다. 내내 들었던 생각이지만 어차피 군부대에 들어갈 때마다 카메라 사용이 제한되니, 차라리 눈을 카메라 삼아 내가 본 것을 더 오래, 더 자세히 바라보며 사진이 아닌 기억과 여운으로 남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도 날씨는 흐렸다. 비가 올 듯 말듯해서 우비를 입을까 말까 고민할 정도의 구름이었다. 흐린 하늘을 뒤로하고 백암산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고 했다. 기지처럼 보안이 철저한 구조였고, 정해진 시간과 인원만 탑승이 가능했다. 케이블카에 오르자 약간은 긴장됐고,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높은 곳까지 순식간에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날이 흐린 탓에 뚜렷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분위기가 있었다. 구름이 산등성이 위를 스치고, 나무들은 안개 속에 반쯤 가려져 있어서 무언가 비밀스럽고 묘한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날씨 탓에 뷰가 아쉽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흐릿한 분위기가 더 기억에 남았다. 선명하지 않아서 더 집중해서 자세하게 오래 바라보게 되는 이점도 있으니까. 케이블카 체험 후 이동한 곳은 세계 평화의 종 공원에 도착하니 밥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먹은 제육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도 ‘평화를 위한 종’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나무 종이 있었는데 다른 대원들이 나무 종인데도 치면 소리가 난다고 장난을 쳐서 모두가 한번씩 다 쳐봤던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를 되돌아보면 날이 좋았다면 더 멋졌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흐린 날도 나름의 감성이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신교대에 도착했는데 미니 군용장비 전시회도 열렸다. 총, 군용차 등등 모든 게 다 신기했다. 밤에 샤워를 하는데 발톱이 들려있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5일 차 : 사실 오늘 걸은 이유는 커피 때문이었어요

이날은 7일간의 여정 중 두 번째로 긴 행군 일정이 있었다. 하루에 약 10km를 걷는다는 계획을 보고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됐다. 걷기 전, 선크림을 두껍게 바르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다행히 날씨는 맑고 해도 쨍쨍했다. 쨍한 햇빛 덕분에 풍경은 평소보다 더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그 햇빛이 더위가 되어 온몸에 내려앉았다. 초반엔 수월하게 걸었지만, 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졌다. 그럴수록 나는 말을 더 많이 했다. 말하고 싶다기보다는, 억지로 에너지를 내서라도 끝까지 걷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걸음이 느려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내 한 걸음 한 걸음이 족적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고 걸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먹은 에너지바와 이온음료가 큰 힘이 되었다. 덕분에 식사량도 평소보다 많아졌고, 체력이 점점 붙는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사실 나를 걷게 한 진짜 원동력은 따로 있었다. 바로 목적지에 도착 후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카페인 없이 5일을 보내는 건 꽤나 힘들었고, 지금 상황에서는 커피가 내겐 최고의 보상이었다. 부대에 도착한 뒤 다리를 보니 웬 무가 있는 것 같았다. 그날은 머리를 베개에 대자마자 잠들었다. 그만큼 많이 걷고, 많이 지쳤고, 그래서 더 뿌듯한 하루였다.

6일 차 : 걸으면서 느낀 느림의 미학

6일 차에는 제2땅굴을 방문했다. 1975년 국군이 발견한 이 땅굴은, 북한이 남침 시 활용하려고 지하 50~160m 깊이에 비밀리에 파놓은 것이었다. 그 깊이를 파 내려간 북한도 용하지만, 그걸 찾아낸 우리 국군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가 있었지만, “언제 또 북한이 판 땅굴에 들어가 보겠나” 싶어 꾹 참고 입장했다. 땅굴 안은 매우 춥고, 천장이 낮아 키가 큰 나는 계속 머리를 부딪혔다. 중간쯤 들어갔을 때부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결국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앰뷸런스에 실려 간호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고, 다행히 심박수가 금세 안정됐다. 그새 잠깐 떨어져 있었지만 조원들이 보고 싶어서 전망대까지만 앰뷸런스를 타고 이동하고 다시 함께했다. 날이 좋으면 전망대에서 북한이 보인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오후에는 약 8km 행군이 이어졌다. 비가 와서 우비를 입고 걸었는데, 사실 판초우비를 전부터 한 번쯤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판초우비를 입었다. 폭우는 아니었고, 적당한 빗속에서 걸으니 오히려 더위를 식혀줘서 좋았다. 웅덩이를 피해 징검다리 건너는것 마냥 걷는것도 재밌었고, 뒤처지는 대원들을 살피면서 천천히 걸었던 탓에. 바람에 흔들리는 벼와 달팽이들, 쫄딱 젖은 강아지까지 다양한 풍경을 보느라 눈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저녁엔 장기자랑 준비를 하며 싸이버거를 먹었다. 평소 먹던 맛보다 더 맛있게 느껴졌다.

7일 차 : 통일되면 우리 전망대 스타벅스에서 만나요

이제 대장정도 점점 종반에 접어드는 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임진각까지 도보로 이동했고, 도착 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첫 휴가를 받은 군인들 기분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갑자기 생긴 자유에 들떠서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눈이 쉴 틈 없이 움직였다. 미국에서 온 친구와 구슬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했고, 공원 곳곳을 함께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었다. 오후에는 애기봉 전망대에 방문했다. 강 너머로 산과 흰 건물들이 보였는데, 그곳이 북한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였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속으로 “우리 꼭 만나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잔해요”라고 속으로 외쳤다. 너무 가깝지만, 너무도 먼 거리였다. 저녁엔 마지막 밤을 기념해 삼겹살을 먹고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조별로 준비했던 장기자랑도 이어졌다. 우리는 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무대를 즐기자는 분위기였고, 덕분에 부담 없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다른 조의 무대를 보며 자지러지게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면서, 진심으로 함께 즐긴 시간이었다.

이 모든 시간이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첫날의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폭염과 비를 뚫고 함께 걸어온 우리는 어느새 ‘전우애’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8일 차 : 내 마음속 깊은 울림

마지막 날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미군들은 유쾌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처음엔 약간 당황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자기 나라가 아닌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고마워서 알량한 영어회화 실력으로 마음을 전하는 데 성공했다. 오후에는 평택 해군 제2함대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천안함이 인양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중학생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지만, 다시 봐도 절단된 선체와 늘어진 전선, 부품들은 그날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해단식에서 수료증과 함께 군번줄을 받았다. 수료증을 받으니 괜히 뿌듯했고, 마지막 거수경례를 하는 순간 7일간의 모든 기억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함께 땀 흘리고 걸으며 많은 경험도 하고 시야를 넓힐수 있는 시간이었다.

 ▲ 15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마무리 - 우리 잘 걸어왔구나

이번 국토대장정은 나에게 다양한 의미로 깊은 울림과 많은 생각을 안겨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자퇴한 이후 나는 다시는 군과 인연이 없을 줄 알았지만, 인연의 끈은 생각보다 길고 단단했다.

병영생활을 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날도 있었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던 날도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군인들의 생활 환경과 처우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고, 많은 현역 군인분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현재 중위로 복무중인 남자친구를 비롯해 아직 군 복무 중인 후배들과 군 복무를 마친 친구들은 전방 혹은 후방에서 그림자처럼 국가를 위해 자신을 바쳤었고 바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또한 이번 여정에서는 조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평화를 수호할 많은 군사학과나 학군 사관 후보생인 대원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에 맞는 지덕체를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느꼈다.

나는 앞으로 교사가 된다면, 단순히 교과 지식만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함께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학생들이 나처럼 국토대장정을 통해 이 땅을 직접 밟는 경험을 하게 해주면 너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체감하며 즉 경험을 통해 배우는 교육을 실천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 특히 이번 대장정을 통해 배운 공동체 정신, 인내심 , 끈기는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가치라고 느꼈다. 항공우주 분야의 엔지니어가 된다면, 나는 발전 그 이상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마주한 블랙이글스, 전투기 격납고, 전방의 군 기지들은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었다. 내가 앞으로 만들어가고 발전시킬 기술이 단지 공학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보면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자각과 내가 다루게 될 설계도 하나, 소재 하나가 국민의 평화로운 일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책임감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나는 어떤 길을 걷든 7일간 걸었던 기억을 잊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해와 폭우를 견디고, 서로를 기다려주며 함께 완주했던 그 시간들은 내가 어디에 서 있든, 국가에 보답하고 발전에 기여하고자하는 마음의 중심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 100명이 걷는 모든 길이 결국 더 나은 내일의 미래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konas)

정수정 :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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