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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9) 쇼츠부문 - 가장 숭고했던 하이킹

Written by. 김정환   입력 : 2025-09-02 오후 3: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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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15기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쇼츠부문 우수작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들어가며]

하이킹은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익숙한 일상과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에 둘러싸여 걷다 보면, 마치 모험가가 된 것처럼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고 느낀다. 서울에서는 집 근처 냇가의 산책로를 셀 수 없이 걸었고,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닐 적에도 다양한 오름들과 한라산을 등반해보기도 했다. 심지어 마천루가 즐비한 미국 보스턴과 중국 홍콩에 체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플럼 아일랜드 (Plum Island)’와 ‘사자산 (Lion Rock)’과 같은 자연이 살아 있는 외곽 지역에서 수려한 경치를 즐기며 도시의 피로를 씻어냈다.

 ▲ 15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9조 조정 김정환 학생 ⓒkonas.net

 

그러한 내가 이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것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한창 군 복무 중이던 나는 우연히 국방일보에서 제14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고,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기회라는 생각에 ‘전역 후 버킷리스트’ 1순위로 간직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전투복을 벗고 대한민국 국군의 강력한 방위 하에 일상을 보내는 예비역이 되었고, 제15회 대학생 휴전선 전적지 답사 국토대장정에 입단함으로써 소중하게 품었던 버킷리스트 1순위를 이루게 되었다.

사실 국토대장정의 여정은 출발하기 약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과거 훈련소 시절, 한여름에 훈련을 받고 행군을 하는 과정에서 온열질환에 허덕였던 경험이 있기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무더운 여름 날씨에 걷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서울 북부에 위치한 서울둘레길의 여러 코스들을 자주 걸으며 체력을 다졌다. 그 과정에서 가파른 산과 울창한 숲, 아스팔트의 열기가 올라오는 도시 등의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추후 성공적인 국토대장정을 위한 초석을 쌓아갔다.

[1일차 (2025년 6월 23일)]

위대한 여정의 첫날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아침으로 시작됐다. 필요한 준비물들은 미리 챙겼기에 크게 할 일은 없었지만 정작 시작일이 되자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보다 새롭고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훨씬 더 컸기에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집합 장소인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재향군인회 빌딩으로 이동했다. 빌딩 안 어느 벽에 붙어있던 포스터가 생각난다. “그들이 지켜낸 어제 / 우리가 피워낼 내일”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던 포스터에는 태극 문양 대신 무궁화가 가득 담긴, 녹슬고 구멍난 철모가 위치한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 그걸 보니 이번 국토대장정이 단순한 도보 행진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의미가 있는 여정임을 실감했다.

출발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재향군인회 관계자 분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으며 국토대장정의 막을 올릴 강원도 고성으로 출발했다. 비록 무더운 날이었지만 버스 창 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구름들과 푸른 하늘, 층층이 우뚝 솟은 산들을 보니 저절로 청량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도착한 곳은 통일전망대였고 우리는 그 곳 교육관에서 첫 일정인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했다. 교육을 듣고 물품을 받고 조별로 모여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조장을 정할 때에는 내가 유일한 지원자였기에 망설임 없이 조장을 맡게 되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국토대장정에서 내가 조장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일반적인 대원보다 더욱 책임감이 요구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조장이라는 책임이 때론 무겁게 느껴지겠지만, 익숙한 편안함에 머문다면 진정한 성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안락함에서 벗어나 낯설고 고된 환경에도 적응하고자 한다면 그 과정에서 좋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2일차 출정식을 대비한 연습과 석식 등의 일정을 마치고, 창 밖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2일차 (2025년 6월 24일]

향군! 출정식과 함께 국토대장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이다. 아침에는 간단히 출정식 연습을 이어 했고, 이후 통일전망대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에 “국도7호선종점”, “부산광역시 ~ 함경북도”라고 적혀있는 도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분단만 아니었다면, 부산에서 함경북도까지 한반도의 동부를 길게 이었을 7번 국도. 하지만 현실은 그 길이 중단된 채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미수복 지역인 함경북도에 대한 대한민국의 수복 의지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졌다. 통일전망대로 진입하기 전에 있던 검문소에서는 처음으로 현역으로 근무 중인 육군 장병들을 볼 수 있었는데, 전투복에 부착된 검은색 완장에 새겨진 ‘민정경찰’이라는 글자과 국방색의 위장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그 위장 태극기를 보니 그 장병들이 그 순간에도 현행 작전 중이라는 점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후 도착한 곳은 6.25 전쟁체험전시관이었다. 그 곳에서 유독 내 눈에 띄었던 전시물은 오랜 세월이 지나 녹슨 채로 보존된 전투 물자들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내가 사용해보았던 신형 수통과 야전삽, 탄통 (탄약통), 수류탄 등이 바로 연상될 정도로 모양 자체가 유사했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참전 용사들이 그 물자들을 실제 전장에서 사용하여 적을 격퇴하셨고 지금의 평화를 지켜주셨다는 점이 새삼 감사하게 느껴졌다. 전시관에는 현재의 침대식 병영 생활관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걸 보며 내가 생활했던 생활관이 잠시 생각나기도 했다. 그 곳에 전시되어 있던 전투복과 전투화, 반합, 야전삽, 총기수입도구 등 현재의 국군 물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장병들이 국토 방위 임무에 헌신하고 있고, 아직 한반도에 완전히 마무리지어지지 않은 전쟁이 남아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전시관에서 나와 차량으로 이동한 곳은 ‘금강산전망대’라고도 불리는 ‘717 OP’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안보관광객 접근금지”라는 표지판과 “미확인 지뢰지대”라는 표지판을 보자 위압감이 살짝 느껴지기도 했다. 곧 이어 717 OP에 들어서자 드넓은 DMZ의 푸르른 산과 해안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든 호수인 ‘감호 (鑑湖)’는 비록 먼 거리에 있었지만, 죽기 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맑고 아름다웠다. 평소에 가볍게 걷는 코스보다도 짧은 거리,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언제 밟아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땅이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한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이렇게 느끼는데 이북의 고향에 갈 수 없고 가족들을 만날 수 없는 분들의 설움은 어떠할까. 그 분들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안타까움을 뒤로 하며 통일전망대로 이동했다. DMZ의 풍경을 구경하며 점심식사를 한 뒤, 출정식 연습 이후 실제 출정식을 거행하였다. 여기에는 신상태 향군회장 님을 비롯한 향군 내빈 분들이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셨다. 내빈 분들의 뜨거운 격려를 받으며 드디어 국토대장정 여정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앞뒤로 길게 이어진 대원들의 행렬은 바다 위로 출렁이는 물결처럼 장관이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량을 제외하면 고요한 시골길을 우리의 발걸음 소리과 환호성으로 채우며 걷고 또 걸었다. 몇 킬로미터 즈음 걸었을까.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랐고, 버스에 탑승하여 검문소를 통과하였다. 검문소 쪽에 설치되어 있던 표지판에는 “준비는 철저하게, 응징은 강력하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 후로 버스는 제12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부대로 진입한 뒤에 생활관을 배정 받았다. 대장정 중에 처음 사용하는 생활관은 컨테이너식 생활관이었는데, 컨테이너가 여러 개 쌓여 있어 하나의 건물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에 생활관과 세면장, 샤워장, 세탁실, 심지어 상황실까지 있는 구조는 정말 놀라웠다. 일반적인 생활관보다는 작았으나 침상과 관물대, 심지어 에어컨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병영식으로 식사를 마친 뒤 이어진 일정은 안보교육이었다. 전직 육군 장교인 강사분이 진행하신 교육은 처음에 안보교육이라 지루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고 느낄 만큼 재미있는 강의였다.

이어서 조별로 앉아 조별 과제와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국토대장정 특성상 넉넉하게 자유시간을 가질 수 없으니 8박 9일 안에 장기자랑을 준비한다는 것이 조장으로서 적지 않은 부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군대에 있을 때 부대 행사에서 장기자랑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거의 3주간 매일 같이 개인정비 시간에 연습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장기자랑을 성공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없다’라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2일차의 마지막 일정은 저녁 점호. 군인 신분으로 마지막으로 저녁 점호를 한 날로부터 139일 뒤에 다시 해본 저녁 점호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저녁 점호를 마치고 눕자 작다고 생각했던 생활관이 이제는 아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금 작지만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국토대장정에서의 두번째 밤을 보냈다.

[3일차 (2025년 6월 25일)]

2025년 6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향군 국토대장정 중에 보내는 이번 6월 25일은 더욱 특별했다. 아침에는 유독 비가 왔기에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되었다. 3일차의 대장정은 춘천역 부근에서 시작하여 북한강변을 따라 진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도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티오피아 (이디오피아) 군은 6.25 전쟁 간 강원도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함께 싸웠고, 그 결과 122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당시에 몇만 리 넘게 떨어진, 이름조차 생소한 국가를 위해 함께 싸워주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며 묵념했다.

이후에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춘천 닭갈비를 먹고 공군 제8전투비행단으로 이동했다. 공군 부대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느낀 점은 부대의 부지가 정말 거대하다는 것이다. 전투기를 운용하는 공군 특성상 활주로와 격납고를 비롯한 대형 시설들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그로 인한 지원 부대와 인력도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 구경한 정비격납고도 작은 상가 건물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컸다. 정비격납고 안에 들어가 눈앞의 전투기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평소에는 멀리서 작게만 볼 수 있는 전투기를 천천히 관찰해보니 세부적인 부품들이 합쳐져 파괴적인 전투력을 자랑하는 전투기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기함과 더불어 경외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격납고를 구경한 뒤에는 블랙이글스 전시관으로 이동하여 구경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 전시되어 있던 각종 전시물들도 놀라웠지만 뛰어난 실력과 함께 탁월한 인성도 갖춰야만 블랙이글스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블랙이글스가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최고의 팀이 된 배경에는 팀원의 인성까지 고려하는 세심한 선발 과정이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군가 배우기’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진행자 분들이 워낙 재미있게 행사를 진행해주셨기 때문에 사실상 군가 학습을 겸한 레크리에이션 시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국토대장정 대원들의 열기가 이렇게까지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었고, 그렇기에 마지막 밤에 있을 ‘소통의 밤’ 시간이 더욱 기대되었다. 이 시간 동안 다루었던 군가는 ‘멋진 사나이’였는데, 흥겨웠던 기억 덕분에 지금도 그 노래를 종종 떠올린다. 마지막으로는 조별로 앉아 닭강정을 먹으며 조별 활동을 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때 조원들과 토의하면서 조금 더 장기자랑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 후, 개인정비 시간과 저녁 점호를 거쳐 잠자리에 들었고, 국방과 평화, 공동체의 힘을 함께 배운 뜻깊은 하루의 끝이 났다.

[4일차 (2025년 6월 26일)]

4일차의 아침이 밝아왔다. 하루 일과가 빼곡했던 탓에 평소보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첫 일정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케이블카인 백암산 케이블카에서 진행되었는데, 백암산 케이블카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 날 숙영할 제7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를 비롯해 수많은 이름 모를 군부대와 군사 시설들을 지나쳤다. 작은 시설일지라도 그 안에 장병들이 상주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이토록 많은 장병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비록 케이블카이지만 엄연히 민간인 통제선 너머에 있기에 검문 절차를 거쳤고, 그 후에도 대한민국 최북단 케이블카에 접근하기까지 상당히 긴 거리를 버스로 이동해야 했다.

백암산 케이블카에 탑승한 후에는 첩첩이 겹쳐진 산세가 창밖에 펼쳐져 장관을 이뤘다. 짙게 깔린 안개는 신비로움마저 자아냈고, 창밖에서 들어온 맑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며 청량감을 안겨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험한 산들 위에 케이블카를 지었는지 의문이 드는 지형을 넘어 탑승 후 약 15분 후에 정상에 도착했다. 비록 안개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멀리 볼 수는 없었지만 백암산 정상의 맑은 공기를 마시니 마음 속까지 깨끗하고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내려갈 때에는 케이블카 옆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내려갔는데 확 트인 공간을 감싸 안은 듯 솟은 산들을 바라보며 ‘나중에는 속세를 벗어나서 이런 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대원들이 백암산 케이블카에서 내린 뒤에는 ‘세계 평화의종 공원’ 부근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까지 먹었다. 가만히 있어도 절로 땀이 나는 더위 속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평화의 종’ 모형이 설치된 곳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평화의 댐’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실제 평화의 종은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발생한 탄피들을 녹여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만든 종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계 곳곳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무력충돌이 잦아지고 있는 요즘이기에 평화의 종 모형을 보는 내 마음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후에는 제7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하였고, 부대에 도착한 뒤에는 연병장에 차려진 군용 장비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슬리퍼부터 전투복, 소총, 박격포, 군용 차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비들을 직접 보고 체험해볼 수 있었다. 내가 사용해본 장비들은 당연히 익숙했지만 어떤 장비들은 아예 처음 보는 것들도 있어 호기심에 이것저것 만져보기도 했다. 심지어 박격포 장치를 조정해보고 타본 적 없는 기종의 군용 차량에 직접 탑승해보기도 했는데, 관련된 경험이 없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장비 견학이 끝난 뒤에는 생활관을 배정 받고 짐을 내려놓은 뒤, 현역 모병관이 주관하는 육군 간부 모집 설명회를 들었다. 요즘과 같이 심각한 취업난에는 국군 간부가 안정적인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는 저녁식사를 하고 조별 활동을 진행하였는데, 이 날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한 조원에게서 탁월한 장기자랑 아이디어가 나왔기에 장기자랑 준비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이 날도 다름없이 개인정비 시간과 저녁 점호를 진행했지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 조에도 본격적으로 불침번 순번이 왔다는 점이다. 방에서 나온 대원들의 동선을 체크하는 정도의 간단한 임무였기에 부담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불침번을 서본 것도 오래 전이기 때문에 민간인의 신분으로 간만에 다시 한번 서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한 시간의 불침번을 마친 후 비로소 4일차를 끝맺을 수 있었다.

[5일차 (2025년 6월 27일)]

드디어 국토대장정의 절반을 넘어섰다. 기상하여 아침식사와 준비를 마친 뒤에는 버스를 타고 7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출발하여 북한강변의 ‘토속어류생태체험관’ 근처에서 일정을 시작하였다. 준비 체조로 국군도수체조를 실시하였는데 나를 비롯한 군필자들은 대원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내가 군대에서 아침점호를 받을 때에도 국군도수체조를 하고 나면 몸이 상쾌해졌기에 오히려 기다려질 정도로 체조를 좋아했었다. 그렇기에 5일차의 아침에 한 국군도수체조도 상쾌한 아침을 여는 좋은 시작이 되었다.

국군도수체조로 몸을 풀어준 후에는 행군을 시작하였다. 습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옆으로 북한강변의 무성한 수풀을 구경하기도 하고, 다른 대원들과 소소한 대화도 나누며 걷다 보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중간에 그렇게 약 50분간 걷고 난 뒤, ‘화천파로호안보전시관’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6.25 전쟁 간 살해된 지역 반공민간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이 세워져있었다.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다 산화하신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그 후에는 전시관 내에서 설명을 들으며, 당시 배경과 진행과정, 현재에도 발생하는 논란 등 파로호 전투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파로호 전투는 단지 전투의 승패를 넘어, 준비와 단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대이리로 이동하여 두번째 행군을 시작했다. 첫번째 행군과 마찬가지로 북한강변을 따라 오랫동안 걸었는데, 중간에 화천읍 하리의 번화가도 지나갔었다. 특히 꽃들로 잘 꾸며진 ‘화천대교 오거리’ 로터리와 선글라스를 낀 채 낚시하는 곰 동상은 이색적이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중간에 ‘붕어섬’에 오르기도 했다. 그곳에 있던 커피차에서 아이스티를 받아 마실 수 있었는데, 오랜 행군을 마치고 마시는 아이스티는 마시는 즉시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붕어섬 위 커피차에서 음료수를 제공해주셨던 분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붕어섬 위에서 여유롭게 휴식하며 반대편의 산들과 어우러진 북한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이 곳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이어진 행군에서는 북한강 위에서 카누 경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구경하며 ‘만석펜션’ 부근에서 즐겁게 행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행군을 마친 뒤에는 5일차의 밤을 보낼 제1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로 이동하였다. 짐을 풀고 대기하던 중에 스태프 분이 들어와 가위바위보 내기를 하셨고, 마지막까지 이겼던 나는 이긴 사람에게 상품이나 다른 특별한 혜택이 주어질 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그 특별한 혜택이 ‘배식 당번’이 되는 기회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5사단의 부대 소개 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에 우리 배식 당번들은 중간에 열외하여 먼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배식 당번이라고는 했지만 결국 우리는 다른 대원들이 사용한 식기를 세척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각자 나누어 분담한 여러 단계들 중 나는 간단히 씻겨진 식기를 수세미로 제대로 닦는 단계를 맡았다. 그러나 집에서의 집안일 경험으로 나름 어느 정도 다져진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던 나조차도 식기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자, 여유롭게 닦던 손이 어느 새 쉴 틈이 없어졌다. 고된 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감사의 의사를 표해준 대원들이 있었기에 힘을 내어 마지막 식기까지 최선을 다했다.

조별 활동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식기 세척에 참여한 대원들은 간단하게 샤워를 진행한 후 바로 조별 활동으로 참여하였다. 이 날 조별 활동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리 조 장기자랑 공연 중 춤을 연습하기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동작들이다 보니 잘 되지 않았다. 최종 공연까지 불과 이틀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 모든 동작들을 전부 숙지하고 완성도 있게 소화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포기’라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 제한된 시간 내에서 갖은 노력을 다해 공연 전까지 최대한 준비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5일차에는 평소보다 길게 행군했기 때문이었는지 양발에 모두 큼지막한 물집이 잡혔다. 행군을 포기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물집이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기에 어느 정도 지장이 갈 것은 분명해보였다. 평상시에는 아무리 걸어다녀도 생기지 않던 물집이 하필 국토대장정 도중에 생긴 것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물집이 더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며 간단한 의무대 치료를 받았다. 전체 국토대장정 일정 중 가장 긴 거리를 행군했던 5일차는 내게 양쪽 발의 물집을 남긴 채 막을 내렸다.

[6일차 (2025년 6월 28일)]

6일차는 제2땅굴과 노동당사 등 내가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내심 가장 기대했던 장소들을 직접 볼 수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15사단 신병교육대를 벗어나 가장 처음 도착한 곳은 “국제두루미센터”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 날 처음 알게 되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곳에서 잠시 대기한 뒤 곧바로 제2땅굴로 향했다.

제2땅굴은 흰색 안전모를 쓰고 입장해야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예상보다 낮게 드리운 천장과 서늘한 공기에 놀랐다. 땅굴의 천장이 내 키의 3분의 2 정도로 상당히 낮은 곳도 있었기에 자주 몸을 수그려야  했고,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머리가 천장에 부딪힌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땅굴 내부는 시원했지만 축축한 공기가 감돌았고, 고사리처럼 생긴 식물이 서식하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간혹 원으로 표시된 시추공들도 눈에 띄었고, 실제로 제2땅굴을 수색하는 과정에서만 8명의 우리 군 장병들이 전사했으니 땅굴을 통해 기습 공격이 이루어졌다면 어떤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제2땅굴이 조기에 발견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장소인 ‘철원평화전망대’로 이동했다. 철원평화전망대에서는 날씨가 맑을 때 김일성 고지, 백마고지와 같은 역사적인 장소들을 관람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한 6월 28일에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아 있었기에 2층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렇지만 설명을 듣고 날씨가 맑을 때의 영상을 보며 1층 전시관을 관람하는 것도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다음으로 가본 장소는 바로 ‘월정리역’이었다. 분단 전까지만 해도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의 한 역이었지만, 6.25 전쟁으로 인해 경원선이 완전히 단절되고 폐역된 월정리역. 월정리역과 그 안의 부서진 열차 잔해는 그 자체로 분단의 슬픔을 상징한다. 월정리역 안에 세워진 표지판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鐵馬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와 한반도의 몇몇 주요 도시들까지의 거리가 적혀 있었다. 분단이 없었다면 월정리역은 부산 (543 km)보다 원산 (123 km), 함흥 (247 km)에 훨씬 가까운 지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은 남한에서 출발한 열차가 19 km 거리에 불과한 평강조차도 기약 없이 닿을 수 없게 만들었다.

월정리역을 관람한 후에는 점심식사를 한 뒤, 노동당사로 이동했다. 노동당사를 직접 내 눈으로 보니 철원군이 실제로 잠시 조선로동당 치하에 있었고, 결국 국군에 의해 수복된 땅을 내가 밟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건물 곳곳에 패인 총탄 자국들을 보며 6.25 전쟁 당시의 치열했던 교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고, 건물 내에 고문 시설이 존재했다는 설명은 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우뚝 솟은 소련식 양식에서는 권위주의 정권의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고, 창문 하나 없이 뼈대만 남아있는 건물은 흐린 날씨와 함께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약 80여 년 전, 이 건물이 사용될 당시에 그 안팎에서 어떤 공포스러운 일들이 벌어졌을지는 차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 후에 방문한 장소는 바로 ‘백마고지 전적지’였다. ‘백마고지’라고도 불리는 395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벌였던 치열한 쟁탈전 간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 위령비까지 가기 전에는 양쪽에 무수히 많은 태극기들이 걸린 오르막길을 걸었는데, 오르막길에 따라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들이 경건함을 더했다. 위령비 앞에서 묵념하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10일간 24번이나 백마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끝없이 이어진 포격에 고지의 겉표면이 하얗게 드러날 정도의 치열한 전투 현장에 있다면 분명 누구에게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군의 참전용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전투에 임한 끝에 백마고지를 엄연한 우리 영토로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위령비를 뒤로 하고 앞선 태극기들이 수놓인 길을 내려오며 백마고지 전투의 전적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숨보다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더 철저히 지키셨던 참전용사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백마고지 전적지를 견학한 후에 진행한 행군은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틀어서 가장 흥미로운 행군이었다. ‘중세리’의 민간인통제선 너머의 영역에서 옆으로 보이는 철책을 따라 걸었던 행군인데, 남방한계선에 근접한 위치에서 계속 걸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웠다. 육안으로 100 m도 안 되는 거리에 남방한계선의 마지막 철책이 세워져 있었고, 그 너머로는 사실상 비무장지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3 km를 조금 웃도는 행군을 하는 동안 비무장지대의 자연환경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숲 속에는 무성한 나무들과 수풀들이 아무런 간섭 없이 푸르게 우거졌고, 세차게 흐르는 강과 함께 어우러진 그 절경은 이질적인 고요함과 경이로움이 공존했다. 아쉽게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작새능선전망대’에서 찍은 단체 사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이어진 행군은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하여 드넓은 논밭과 낮은 언덕들을 가로지르는 코스였고,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되지는 않았다. 조용한 시골 풍경이 내내 펼쳐졌기 때문에 가끔씩 아름다운 풍경을 찍어보기도 하고,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끝까지 완주했다. 날씨는 흐린 편이었지만, 멀리 보이는 산 위로 내려앉은 안개는 산에 더욱 멋을 더해주었다. 6일차의 마지막 행군은 제6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 근처에서 신병교육대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행군이었는데, 이때에도 옆의 계곡과 산의 경치에 감탄하면서 걸었다. 내가 팔도를 유랑하는 유유자적한 선비였다면 이러한 절승에 분명히 시 한 수를 읊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6사단 신병교육대에 도착했다. 부대에 도착한 뒤 금방 저녁식사를 했고 전날의 당번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개인 식기 세척을 할 필요는 없었고, 크게 배식에 쓰인 식기들을 세척하는 임무와 개인 식기들을 질서 있게 건조기 안에 배치하는 임무를 진행했다. 물론 이 일련의 임무들은 분명 고단한 일이었지만 우리가 병영식당의 뒷정리를 도와주었기에 부대 취사병들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경감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6일차의 마지막 일정은 당연하게도 조별 활동이었다. 넓은 체육관과 같은 시설에서 진행했기에 더욱 철저히 장기자랑을 연습할 수 있었고, 장기자랑 공연의 윤곽이 뚜렷하게 잡혔다. 여전히 안무가 완벽하게 외워지지 않았지만, 6일차의 밤과 다음 날 공연 전까지 안무 영상을 무한 시청하며 ‘벼락치기’하겠다고 결심했다.

가장 처음에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던 국토대장정은 어느새 끝에 가까워졌고,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했던 사람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잘 생각해보면 전역하기 직전, 말년 시절에도 이와 비슷했었다. 한편으로는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즐거웠던 경험들이 과거의 추억으로 밀려나고 사람들과 헤어질 기한을 바라보며 작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영어 단어들을 공부할 때 유독 흥미롭게 느꼈던 단어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ambivalence’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하여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을 표현하는 이 단어가 나의 심정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복잡한 심정을 갖도록 했고, 6일차도 그렇게 페이드 아웃 되었다.

[7일차 (2025년 6월 29일)]

7일차에는 비교적 아침 일찍부터 행군을 시작했다. 9시 경부터 시작된 행군은 5 km을 웃도는 거리로 약 1시간 30분 정도 진행했다. 지형 자체는 6일차에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했던 행군과 유사했지만, 비로 인해 곳곳에 고인 물을 피해 걷자니 진득한 진흙을 밟게 되는 딜레마가 계속되었다. 중간중간에 보이던 표지판에는 “경기둘레길 코스”라는 글자도 보였다. 나는 국토대장정에 참여하기 전까지 서울둘레길을 하나하나 정복하고 있었는데 서울둘레길을 모두 완주하면 경기둘레길도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누리 자전거길”이라는 표지판을 보고는 미래에 나만의 자전거를 장만하여 평화누리 자전거길도 언젠가 꼭 달려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렇게 이어진 행군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근처에서 마쳤다. 이때부터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돌아오신 기존 국토대장정 수료자 분들을 하나 둘 뵐 수 있었다. 일정으로는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와 다른 대원들은 편의시설이 있는 한 건물에 들어가기를 선택했다. 건물 1층에서는 레고 블럭으로 만들어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볼 수 있었고, 올라가서는 ‘망배단’과 ‘임진강철교’, ‘자유의 다리’를 비롯해 주변 풍경을 감상해볼 수 있었다. 실향민들이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제 (祭)를 지내는 망배단과 6.25 전쟁 중에 처참하게 끊어진 상태로 지금까지 유지된 임진강철교 상행선을 보니 실로 분단의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견학을 마친 뒤에는 경기도 김포시에 위치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공원을 자유롭게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애기봉’이라는 이름 중 ‘애기’는 ‘아기’라는 뜻이 아닌 병자호란 시절 한 기생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이를 전쟁 중 포로로 잃고, 그리움에 시달리다 병을 얻고 숨을 거두어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비무장지대에 위치해있어 해병대 장병들이 관리하는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의 꽃은 바로 전망대로, 탁 트인 공간에서 한강 너머의 개성시 마을을 구경할 수 있었다. 망원경 너머로 밭에서 일구는 듯한 사람과 농기계를 운전하는 사람의 모습도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전망대 바로 뒤에는 ‘스타벅스 김포애기봉생태공원점’이 있으며, 국내 최북단 스타벅스로서의 의미가 있는 점포이다. 공원 내에 위치한 전시관에서는 정약용과 김홍도, 신사임당, 정선 등 인물들의 미술 작품도 볼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실제 작품이 아닌 특수한 기술을 활용하여 붓자국 하나하나까지 정교하게 제작한 모형이었다. 전시관 계단 쪽에는 2층부터 1층까지 길게 이어진 LED 스트립들이 빛나는 작품도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니 일본 도쿄에서 체험했던 ‘팀랩 보더리스 (teamLab Borderless)’의 전시물이 연상되기도 했다. 전시관 1층에서 읽을 수 있었던 ‘평화의 소’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었다. 전시관 앞에는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했던 국가들의 국기들이 걸려있었는데, 대나무로 제작한 듯한 게양대에 걸린 것이 특이해서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의 견학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해병대 복지시설인 ‘덕산스포텔’로 향했다. 숙소에 짐을 푼 뒤에 드디어 조별 활동 중 하나인 조별 발표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대여 받은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여 조별로 발표 대본과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었고 준비 시간이 끝나자 조별로 발표를 시작했다. 비록 정형화된 발표 시간이었음에도 조별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빛나는, 개성 넘치는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발표를 모두 듣고 난 뒤에는 그토록 고대하던 시간으로 소량의 주류와 삼겹살을 즐기며 지금까지 잘해낸 우리 모두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힘든 여정 끝에 먹는 삼겹살은 버텨낸 시간만큼 맛도 각별했다. 나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즐기지 않기도 하거니와 마지막까지 조원들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여 술만큼은 조금만 마셨다. ‘삼겹살 파티’를 한 결과, 대원들의 분위기는 거의 끝났다는 생각과 적당히 마신 술로 한껏 달아올랐고, 더욱 장기자랑이 궁금해지고 기대되는 분위기가 되었다.

7일차의 꽃은 단연 대망의 장기자랑 시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사전에 요청하여 준비된 파란 테이프와 노란 테이프를 팔에 휘감았다. 바로 우리는 ‘인간 블랙이글스 전투기’가 된 것이다. 순서는 무작위 추첨이었는데 다행히 우리 조는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닌 중간 정도에 공연했다. 무대로 오른 그 순간몰입하며 하나의 블랙이글스 편대처럼 움직였다. 무대에서 벗어나 관객석들 사이로 돌며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였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트와이스의 “What is Love” 춤을 성공적으로 춘 뒤에는 끝으로 “향군!” 경례를 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다른 조들도 다양한 공연들을 선보였다. 조원 모두가 우비를 입고 절도 있는 동작을 선보인 조부터 군가를 열창하며 떼창을 이끌어낸 조, 심지어 국토대장정 중에 있었던 사건들을 재미있게 풍자한 뮤지컬을 선보인 조까지 모두가 톡톡 튀는 개성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성공적인 공연들이었다. 국토대장정 중 촬영한 장면들을 편집해 만든 추억 영상은 대원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대원들의 공연뿐만 아니라 스태프 분들이 준비한 공연, 사진 작가 님들이 촬영하신 사진들을 모은 영상도 다함께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장래의 향군 국토대장정 대원이라면 기대해보아도 좋겠다. 전체 국토대장정 중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시간은 현수막 밑에서 찍은 단체 사진과 함께 막을 내렸고, 그렇게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저녁도 저물었다.

[8일차 (2025년 6월 30일)]

드디어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기상하여 아침식사를 마친 뒤 간 곳은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이었다. 이 곳에서 이 날의 일정을 함께 할 대한민국 육군 장병들과 주한미군 장병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 주한미군 장병들을 보자마자 다들 체격이 놀랍도록 크고 건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대한민국의 국토를 지키는 데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모든 장병들이 도착한 후에는 유엔군 초전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수많은 유엔군 장병들, 그 중에서도 미군 장병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그들의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깊이 묵념했다. 이후 그 앞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오산죽미령평화공원’에서 대원들과 대한민국 육군 장병들, 주한미군 장병들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즐기고 단체 사진을 찍는 등 유쾌한 시간도 가졌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에서의 일정 다음에는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을 보낼 경기도 평택시의 해군 제2함대 기지로 이동했다. 확실히 해군 기지이기 때문에 바다가 바로 근처에 있었고, 정박된 전함과 잠수함도 볼 수 있었다. 기지 내 ‘서해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에는 기지 내에 전시되고 있는 ‘천안함’ 앞에서 참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본 천안함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 처참하게 두 동강 나있었다. 종잇장처럼 휘어진 철판, 드러난 전선들, 훤히 보이는 자잘한 내부 부품들을 보면서 천안함에 가해진 습격이 얼마나 잔혹한 피격이었는지 눈앞에 펼쳐진 폭발의 흔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천안함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이름과 계급을 보며 꽃다운 시기에 국가를 위해 근무하다 목숨을 잃은 장병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했고,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참혹하게 부서진 천안함 잔해를 뒤로 하며 떠나는 발걸음이 유달리 무거웠다.

 ▲ 15회 향군 대학생 국토대장정 ⓒkonas.net

 

국토대장정의 마지막 일정은 제2함대 ‘충무관’에서의 해단식이었다. 대한민국 육군 장병들과 주한미군 장병들이 함께 한 해단식은 출정식보다 더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해단식 중에는 학생 대표와 조장들이 무대에서 내빈 분들에게 수료증과 인식표를 대표로 수여 받는 차례가 있었는데, 한미 장병들과 백 명이 넘는 대원들 앞에서 수여 받으려니 긴장되기는 해도 기분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수여 받은 후에 내 앞에 계셨던 내빈 분이 나에게 “씩씩하게 자라라”며 덕담해주신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충무관 앞에서 정글모를 높이 던지며 찍은 단체 사진을 끝으로 7박 8일 간의 국토대장정은 모두 끝이 났다.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고 각자 서울, 대전 등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7박 8일 전 떠났던 고향으로 다시 향했다.

[끝맺으며]

국토대장정은 끝났지만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국토대장정을 통해 얻은 고급 장비들을 사용하며 서울둘레길을 하나씩 정복해나가고 있다. 서울둘레길을 완주한 뒤에는 전국의 다양한 산길은 물론, 해외의 명소들도 계속 누비고 싶다. 내가 걸을 수 있는 한, 하이킹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아직 향군 국토대장정에 참가해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에 주저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활동은 무작정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들과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DMZ • 군부대 등의 장소를 견학하는 ‘체험’의 비중이 높은 활동이다. 물론 한여름 땡볕 속을 걷고, 집보다 불편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덟 날 동안 이겨내며 끝까지 나아간다면, 한층 더 성장하고 단단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숙한 조장이었음에도 믿고 따라와준 조원들, 앞과 뒤에서 함께 하며 힘을 북돋아준 다른 대원들, 역대 최고의 행사를 주최해주신 대한민국재향군인회 관계자 분들, 현장에서 성공적인 국토대장정 진행을 맡아주신 김성래 단장님을 비롯한 스태프 분들에게 모두 감사드립니다! 

We are the one! (konas)

김정환 : 미국 보스턴 칼리지

    2026.10.2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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