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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기념] (21) 낙동강 전투 최후의 보루, 영천 마현산 충혼탑

Written by. 인턴기자 김지혜   입력 : 2025-09-23 오전 9: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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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어느 날, 육군3사관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목에서 영천 마현산 충혼탑을 방문했다. 금호강의 잔잔한 흐름 옆, 마현산길에 자리한 충혼탑은 낙동강 전선의 치열한 전투를 전하고 있다.

 ▲ 저물녘 경북 영천 마현산 충혼탑의 전경ⓒkonas.net


충혼탑은 경북 영천시 교촌동, 마현산자락에 있다. 이곳은 6.25전쟁 영천지역 출신 호국영령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이후 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014년 6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립되었다. 충혼탑 뒤편에는 호국영령 봉안당도 마련되어 있어,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했다.

 ▲  현충 시설 안내문과 충혼탑 진입 계단 ⓒkonas.net

 

 영천 전투는 6.25 전쟁의 가장 치열했던 순간 중 하나인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전투이다. 1950년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며 낙동강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은 북한군의 기세를 꺾는 결정적인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는 전세가 역전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영천 전투 개요와 작전 상황도 ⓒkonas.net


 6.25 전쟁 당시 영천은 우리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인 낙동강 방어선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영천은 대구와 포항 같은 중요한 도시들을 잇는 기찻길과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중심지였는데, 만약 이곳이 북한군에게 넘어갔다면 모든 군수 물자와 병력이 끊겨 방어선이 무너졌을 것이다. 따라서 영천 전투는 단순히 한 지역을 지키는 것이 아닌, 방어선 전체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였다.

또한, 영천 전투의 승리는 낙동강 방어선의 유지뿐만 아니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도 기반을 마련했다.

방어선이 굳건히 유지되면서 유엔군은 후방인 인천에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고, 북한군은 그에 대응할 병력을 낙동강 전선에서 빼낼 수 없었다. 즉, 북한군의 시선을 낙동강 방어선에 묶어두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 충혼탑 좌측 태극기와 장병들의 전투 동상 ⓒkonas.net

 

 ▲ 충혼탑 아래 영천 전투를 설명하는 부조 벽화 ⓒkonas.net


충혼탑에 올라 저무는 석양과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내가 서 있는 이 나라는 호국영령들의 흩뿌려진 피 위에 세워진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내가 당연시하던 자유와 행복은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영원히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라가 없다면 자유도 없다. 젊은 우리도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konas)

향군대학생 인턴기자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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