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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기념] (24)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

Written by. 인턴기자 주민우   입력 : 2025-10-14 오전 9: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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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은 약 2주 후인 9월 28일, 수도 서울을 수복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징적인 사건만을 기억할 뿐, 그 사건들을 있게 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번에 취재한 곳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 수복을 가능하게 한 기념비적 전투,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이다.

 ▲ 인천 남동구 부평아트센터 내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게야되어 있다.  ⓒkonas.net

 

부평전투란?

부평전투는 현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간석오거리에서 부평삼거리로 넘어가는 원통이고개에서 연합군과 북한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 직후 서울 수복과 전투 물자 수송을 위해 김포 비행장 조기 확보가 절실했는데, 김포 비행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가 부평이었다.

연합군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후 9월 17일 오전 8시 원통이고개에 도착해 북한의 소련제 T-34 탱크 6대와 인민군 200여 명과 마주쳐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대승을 거두고 서울로 이어지는 주요 거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부평전투는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수복 과정에서 벌어진 최대 전투로 꼽히고 있다.

 ▲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 안내문. 전투 배경과 기념비 건립 취지가 적혀 있다. ⓒkonas.net

 

서울 수복의 핵, 부평전투

1950년 9월 16일 오후 맥아더 장군은 인천으로 상륙하려는 미군 제1해병사단장 스미스(Smith) 장군에게 “김포 비행장을 가능한 조기에 탈취하라.”는 내용을 담은 「작전명령 5-50」을 하달했다.

이날 밤 미 제1해병연대와 제5해병연대는 부평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고지까지 진출하여 부평 지역의 서방 경인가도를 통제하게 되었다. 미 제5해병연대 제2대대는 진지 부근으로 통과하려던 북한군 트럭 1대를 노획하고 북한군 장교 1명과 병사 10명을 생포하였다. 

17일 새벽, 전초부대가 도로상에 북한군의 소련제 T-34 전차 6대와 200여 명의 적이 서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적들은 미 해병대의 진지를 알지 못하였다. 적 전차는 대대 전초진지 앞을 지나 원통이고개를 내려갔고, 대대는 적의 마지막 전차가 이동할 때 포탄을 발사하여 전차 후미를 명중시켰다. 이에 대대 지원화기들이 집중사격 해 적을 제압했다.

이후 대대는 17일 오후 부평을 지나 김포 비행장 서쪽 효성동까지 진출하였다.

 ▲ 기념비 옆 전투 형상화 비석. 조국 수호를 위해 앞장섰던 이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konas.net

 

이날 적은 육상에서뿐만 아니라 인천 앞 해상에서도 야크 전투기 2대를 출동시켜 순양함 로체스터(Rochester) 호와 자메이카(Jamaica) 호를 폭격하여 약간의 피해를 주었다. 그러나 이들 중 1대는 아군 대공포에 격추되고 1대는 도주하였다.

‘부평전투’와 관련한 지역인 ‘인천광역시 남동구 경인로 734’에 인천보훈회관이 자리 잡고 있고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인천시지부가 여기에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인천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에게 김포 비행장을 탈취하기 위해 나아가는 경인국도는 중요한 공격 루트였으며, 부평전투의 승리는 이후 서울 수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 기념비 뒤에 있는 부평지역 주요 전투 상황 비석. 6.25 전쟁 발발 직후 부평 지역에서 벌어진 주요 전투가 적혀 있다. ⓒkonas.net

 

기념비로 승전과 혼을 기리다

부평구청은 부평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면서, 조국을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용사들의 넋을 기리고자 2008년 6월 13일, 부평아트센터 한편에 ‘부평전투 승전 기념비’를 건립했다.

기념비 뒤에 있는 부평지역 주요 전투 상황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우리 후손들은 6.25 한국 전쟁의 역사가 기억 가운데에서 사라지면서 점차 잊혀지고 있는 호국의 영령들을 추모하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기원드려야 할 것이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펄럭이며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석. 75년 전 이곳에서는 수많은 청춘이 조국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konas)

향군대학생인턴기자 주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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